축구에서 만큼은 한국과 이란은 ‘영욕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AFP 제공)
오는 24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한국 축구대표팀과 이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차전이 열린다. 이란과의 결전을 앞두고 ‘이번에는 이겨보자’는 분위기가 한국축구계를 휩싸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란하면 한국 축구 최대 라이벌로 서로 죽자사자 으르렁 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국과 이란은 지리적, 인종적, 사회적 유대관계가 깊지 않은 나라인데 어떻게 ‘축구 라이벌’이 됐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볼 것도 없이 축구에서 만큼은 한국과 이란은 ‘영욕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설의 2-6 참패부터 ‘명경기 제조기’

일반적으로 한국과 이란의 축구 라이벌 시작은 1996 아시안컵 8강으로 본다. 그전까지 여타 국가들과 다르지 않게 밋밋했던 관계는 이 대회 8강에서 한국이 전반까지 2-1로 앞서다 충격적인 2-6 역전패를 당하면서 확 달라진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전 세계 A매치 최다골 1위였던 알리 다에이가 후반 21분부터 44분까지 23분 만에 4골을 몰아넣는 충격적인 플레이에 김병지-홍명보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이 무릎을 꿇는 모습은 한국 축구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날 역전패로 지휘봉을 잡고 있던 박종환 감독이 경질되고 차범근 감독이 부임했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났지만 한국이 이란 원정경기에 참가하면 이란 팬들은 아직도 ‘6-2’나 ‘식스 투(Six Two)’라는 피켓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 경기를 시작으로 한국과 이란은 만날 때마다 치열한 승부와 명경기를 만들어냈다. 무릎에 붕대를 칭칭 감은 만 21세의 이동국이 2000 아시안컵 8강 연장전 결승골을 넣으며 2-1로 이긴 경기, 2004 아시안컵 8강에서는 이란이 먼저 한골을 넣으면 한국이 또 동점을 만드는 식으로 3-3까지 갔다가 끝내 알리 카리미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3-4로 패하는 명승부가 나오기도 했다.

단순히 A대표팀에서만 명승부가 나온 것이 아니다. 23세 이하 팀으로 꾸려진 대표팀은 2010 아시안게임에서 홍명보 감독 지휘 아래 박주영-구자철-지동원 등이 출전해 동메달 결정전에서 1-3으로 뒤지다 종료 직전 2골을 넣으며 4-3 대역전승을 거두는 명장면을 엮어냈다.

이 경기 이후 박주영과 구자철은 한입으로 “내 축구 인생 최고의 경기였다”고 말하면서 '축구를 넘어 인생에서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이 경기가 ‘홍명보의 아이들’이 훗날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눈부신 성과를 이룬 시작이었던 셈이다.

오는 24일 이란과의 승부는 양팀 다 월드컵 진출은 조기 확정한 가운데 조 1위를 놓고 다투는 자존심 싸움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사진=AFP 제공)
케이로스 ‘주먹 감자’와 지옥의 아자디 원정

한국의 2-6 패배 이후 수많은 명경기를 만들어내던 한국-이란의 경기는 2013년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제대로 ‘라이벌’로 각인된다. 이란의 주장 자바드 네쿠남이 “한국에게 이란 원정 지옥을 보여주겠다”고 도발하자 손흥민은 “피눈물을 흘리게 해주겠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최강희 한국 감독과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간의 설전이 오가다 끝내 한국이 0-1로 패하자 이란은 한국을 조롱했다. 그러다 케이로스 감독은 소위 ‘주먹감자’로 불리는 도발적 제스처를 한 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최강희 감독의 얼굴이 페인팅된 티셔츠를 입는 등 도발을 서슴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과 이란의 라이벌 의식은 고조됐고 서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댔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2011 아시안컵 8강전 승리 이후 지금까지 10년 넘게 이란을 상대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3무 4패로 열세인 것이 아쉽다.

또한 이란의 홈구장인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한국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8경기 3무5패)이 가슴 아프다. 10만 관중이 들어선다는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지난해 10월 한국은 코로나19로 인한 무관중 덕에 이란 관중의 극성스런 응원을 피한 채 손흥민의 골까지 터져 드디어 이기나 싶었지만 1-1 무승부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조 1위와 아시아 최강 놓고 다투는 자존심 대결

오는 24일 이란과의 승부는 양팀 다 월드컵 진출은 조기 확정한 가운데 조 1위를 놓고 다투는 자존심 싸움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란은 7승1무, 한국은 6승2무 상태에서 맞붙는데 여기서 지는 팀은 무패 행진이 종료되면서 조 1위를 넘겨주게 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승리할 경우 랭킹포인트가 상승함에 따라 월드컵 본선 조추첨에서 포트3에 들어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포트가 높을수록 약팀과 맞붙을 확률이 높기에 포트3에 들어가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한국과 이란은 직전 월드컵인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은 세계 1위였던 독일을 2-0으로 이긴 ‘카잔의 기적’을 만들어냈고 이란은 스페인-포르투갈과 함께 죽음의 조에 속했음에도 1승1무1패를 기록했다.

특히 최종전이었던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는 호날두의 포르투갈이 실점 하지 않기 위해 수비를 걸어 잠글 정도로 이란의 경기력은 인상적이었다.

한국은 이번 자존심 대결에서 승리해 좀처럼 변하지 않은 이란전 열세 구도에 전환점을 만들어내겠다는 목표다. 과연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승리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온 국민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