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이전부터 한은 총재 임명, 법무부 업무보고 취소까지 확전 양상

[주간한국 김동선 기자]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두고 신구(新舊) 권력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공기관 인사권과 이명박(MB) 전 대통령 사면을 둘러싼 기싸움으로 시작된 청와대와 인수위간 갈등의 불씨가 확전된 것이다. 여기에 문 대통령의 한국은행 총재 지명을 놓고 인수위가 사전 교감이 없었다며 반발한 데 이어 법무부 업무보고마저 유예하겠다고 밝히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문재인 대통령의 회동도 2주 넘게 미뤄지고 있다. 과거에도 정권 이양기에 신구 권력은 크고 작은 갈등을 빚어왔다. 특히 이번 양측의 충돌은 14년전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 측이 현안마다 갈등을 빚었던 상황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임기가 끝나지 않은 대통령의 법률적으로 보장된 권한 행사는 뒤집으면 '몽니'로 비춰지고, 대선 승리 여세를 몰아 새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을 반영하려는 당선인의 의지는 반대측에선 '불통'으로 여겨진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안보 빈틈 없어야" vs "무서운 세입자 아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관련해 청와대와 인수위 양측은 표면적으로는 갈등 프레임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에 대해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었다는 지적에 대해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를 밝힌 것"이라며 "신구 권력의 갈등이나 반대가 아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도 광화문으로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했다가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공약 실천을 못했던 만큼 대통령 집무실을 국민 곁에 두겠다는 윤 당선인의 의지에는 공감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인수위의 결정이 지나치게 성급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정과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를 표한 청와대의 입장에는 사실상 반대로 읽히는 완곡한 표현이 곳곳에 배어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은 22일 국무회의에서 "국정에는 작은 공백도 있을 수 없다. 특히 국가안보와 국민 경제, 국민 안전은 한 순간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며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 군 통수권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을 마지막 사명으로 여기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발언에는 '청와대 용산 이전'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전혀 없지만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대한 반대 입장이 우회적으로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가 반대 의사를 밝힘에 따라 취임일에 맞춰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고, 청와대를 완전히 개방하겠다는 윤 당선자의 계획은 사실상 실현되기 어렵게 됐다.

윤 당선인 측은 즉각 유감을 표시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안타깝다. 문 대통령이 정권 인수인계 업무의 필수사항에 협조를 거부한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논평했다. 이어 "윤 당선인은 통의동에서 정부 출범 직후부터 바로 조치할 시급한 민생 문제와 국정 과제를 처리해 나갈 것"이라며 "5월10일 0시부로 윤 당선인은 청와대 완전 개방 약속을 반드시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취임 전 용산 집무실 계획이 무산됐지만 임기를 시작하더라도 현재의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고 통의동 당선자 집무실에서 임기를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김 대변인은 '5월10일 0시부로 청와대를 개방하겠다는 말은 방을 빼라는 건지'에 대한 질문에 "저희는 무서운 세입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존심 대 자신감의 충돌...노무현-이명박 갈등 '데자뷰'

이같은 신구 권력의 갈등은 어딘지 기시감이 있다. 과거에도 정권 교체기에 신권력과 구권력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이 왕왕 벌어졌다. 2008년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인수위가 정부조직 개편과 국가기록물 이전 문제 등을 두고 빚었던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이명박 당선인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진보 정권에서 확대·신설된 통일부·해양수산부·여성가족부 등을 대거 폐지 또는 축소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에 당시 노 대통령은 "철학과 소신이 충돌하는 개편안을 수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이 당선인은 "타협하지 말고 원안대로 통과시켜 달라"고 한나라당에 주문했고 노 대통령은 "대선 이겼다고 모든 권한 위임받은 것 아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후에도 청와대는 인수위의 주요 정책에 대해 일일이 반박했고 인수위와 한나라당은 '권력남용'이라고 비판하는 등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3개월간 대치 국면이 이어진 끝에 여야는 해양수산부는 폐지하되 통일부와 여가부는 존치하는 것으로 겨우 합의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불과 나흘 전에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되면서 이 대통령은 첫 내각 구성을 완성하지 못한 채 반쪽 임기를 시작해야 했다. 이에 더해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 국무위원 후보자들이 줄줄이 인사청문회를 넘지 못하면서 새 정부 첫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는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참여정부 국무위원을 빌려오는 촌극까지 빚어지기도 했다.

당시 양측의 갈등은 선거에 상대 정동영 후보를 22.5%포인트라는 압도적인 격차로 이긴 이 대통령의 밀어붙이기식 자신감과 자신의 국정운영 전반을 부정당한 것으로 인식한 노 대통령의 자존심이 충돌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선 승리의 기세를 몰아세웠던 이 대통령은 거대 야당과의 협치 실패로 임기 초반 귀한 시간만 허비해야 했고 당시 야당과 노 대통령도 새 정부 발목잡기라는 여론의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신임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향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대선 불복...발목 잡기" vs "졸속 추진...안보 공백"

14년이 지난 지금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은 확전 일로다. 국민의힘은 '대선 불복 심리가 의심되는 발목 잡기'라고 날을 세우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안보 공백이 우려되는 졸속 추진'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청와대 집무실 이전 계획에 대해 청와대는 당선인 국정운영 방향을 존중한다더니 반나절도 되지 않아 입장을 뒤집었다"며 "청와대를 나와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마저도 내가 하면 옳고 남이 하면 안 된다는 이 정권 특유의 '내로남불'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허 대변인은 "청와대와 민주당은 더 이상 안보 공백이라는 핑계와 이전 비용 1조원 등의 가짜뉴스로 새롭게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며 "윤석열 정부의 첫걸음에 문 정부와 민주당은 몽니와 오기가 아닌 화합과 협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스스로 지키지 못한 대국민 약속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강조했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당초 대통령 집무실 이전 대상지였던 광화문 정부 청사를 포기하고 용산 국방부로 이전하겠다고 하기까지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며 "아무리 뜯어봐도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졸속 추진"이라고 꼬집었다. 고 대변인은 이어 "작은 정부기관을 이전해도 충분한 시간과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물며 국정과 국가안보의 기둥인 대통령 집무실과 국방부 이전을 50일만에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여야 의원들의 공방은 국회 안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22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긴급 현안질의에서 4성 장군 출신의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두 달도 채 안 되는 기간에 국가의 위기관리 컨트롤타워를 이전하는 것이고 졸속으로 추진하다 보니까 국정 공백과 안보 공백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며 "특히 50여개 이상 국가 재난·재해 등을 관리하는 청와대 위기관리센터가 당분간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왜 국정 공백, 안보 공백을 말하면서 새로 들어오는 정부에 대해 발목잡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용산 국방부 청사와 청와대.(사진=연합뉴스)
◆여론 "집무실 이전 반대" 우위...보수층서도 속도조절론

윤 당선인은 '국민과의 소통'을 이유로 용산 시대를 열겠다고 했지만 정작 여론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많다. 최근 이와 관련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절반이상이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9~20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2일 발표한 정기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응답자의 58.1%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에 반대했다. 찬성한다는 응답은 33.1%에 그쳤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미디어헤럴드 의뢰로 지난 22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해 23일 발표한 결과에서도 '반대한다'는 응답이 53.7%(매우 반대 43.2%, 반대하는 편 10.6%)로 절반을 넘었다. '찬성한다'는 응답은 44.6%(매우 찬성 30.4%, 찬성하는 편 14.3%)였다.

이런 여론의 흐름은 국민의힘 내부와 보수층에서도 엿보인다. 대표적 보수논객으로 통하는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부분적으로 제왕적 요소는 없지 않았지만, 지난 70여년 한국 현대사 중심부를 이렇게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사실에도 맞지 않고 일종의 선동"이라며 "국민들이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시위를 한 적이 있나? 분단 현실에 비추어 청와대의 특수한 처지를 양해하고 참아왔지 않나? 그렇다면 무리하게 추진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전제는 취약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은행. (사진=연합뉴스)
◆한은총재 '난타전', 법무부 보고 유예...기약없는 文-尹 회동

청와대와 인수위간의 갈등은 한국은행 총재 지명을 두고서도 벌어졌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지난 23일 청와대가 한국은행 신임 총재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명하면서 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었다고 발표하자 즉각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장 실장은 "저희는 그런 분을 추천하고 동의한 적이 없다"며 "발표하기 10분 전에 (청와대에서) 전화가 와서 웃었고, '일방적으로 발표하시려면 마음대로 하시라. 저희는 추천하거나 동의하지 못하는 인사'라고 했다"고 말했다.

한은 총재 지명에 윤 당선인 측과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장 실장의 발언에 청와대는 발끈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진실 공방을 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자꾸 그렇게 거짓말을 하면 (인사 협의 과정을) 다 공개하겠다"고 경고했다. 이 관계자는 이 국장이 윤 당선인 측에서 추천한 인물이라고 밝히며 "(차기) 한국은행 총재 이름이 언론에 많이 나와 (당선인 측에) 두 사람을 물어봤고, '두 사람 중 누구냐' 했더니 '이창용'이라고 해서 지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인수위가 예정된 법무부의 업무보고를 유예하기로 하면서 상황은 더 꼬여가고 있다. 인수위는 24일 "40여일 후에 정권교체로 퇴임할 장관이 부처 업무보고를 앞두고 국민에게 선출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을 반대했다"며 "무례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에 우리 인수위원들은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면서 법무부 업무보고를 유예한다고 밝혔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전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인 수사지휘권 폐지와 검찰 예산편성권 부여 등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에 강한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이처럼 사안마다 갈등이 빚어지면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은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다. 직선제 이후 지금까지 신구 권력의 회동은 대부분 열흘을 넘기지 않았다.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선후 4일만에 났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후 2일,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4일, 노무현-이명박,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각각 9일이 걸렸다.

당선인과의 회동이 늦어지자 문 대통령은 답답함을 토로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24일 윤 당선인을 향해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말고, 직접 판단해 주길 바란다"며 조건 없는 회동을 다시 한번 제안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인 측은 "윤 당선인의 판단에 마치 문제가 있고, 참모들이 당선인의 판단을 흐리는 것처럼 언급하신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되받았다. 문 대통령이 회동 지연의 원인으로 윤 당선인 측 '다른 이들의 말'을 지목하며 책임을 넘기자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김동선 기자



김동선 기자 matthe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