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카이로 구시가지의 빵 상인. (사진=연합뉴스 제공)
우크라이나 사태발 신흥시장 위기가 꿈틀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 달을 넘기고 장기화하며 전 세계 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미국의 금리 통화 정책 정상화와 맞물리며 제재의 대상인 러시아는 물론 신흥 시장에 까지 파장을 불러오는 상황이다. 신흥국 통화가치 절하가 기축 통화국인 미국 등 주요 국가를 제외한 세계 경제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부상 중이다.

마침 최근 넷플릭스로 전 세계에 방영 중인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한국 기업들의 몰락, 대량 실업 발생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좌절과 사랑을 재현하고 있다. 과연 이런 상황이 되풀이 될까. 또한 한국의 경우는 경제보다는 안보차원의 문제도 제기된다.

최근 해외에 유학생을 둔 부모들의 고심이 크다. 자식들에게 송금할 때 마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5일 1240원대를 기록했다. 원화 값은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후 연일 1200원대에서 머물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곳은 이집트다. 이집트 중앙은행은 우크라이나산 밀 의존도가 큰 상황에서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우려가 가중되자 금리를 5년 만에 9.25%에서 10.25%로 1%포인트 인상했다. 외국인 투자금 이탈을 막기 위한 방안이었지만 전격적인 금리 인상 후 이집트 화폐 가치도 14%나 급락했다. 이집트는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해 IMF에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공급받던 유럽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밀 의존도가 높은 중동에서 위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확인된 셈이다.

아시아 신흥국들 역시 위기 전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24일 현재 외국 투자자들이 태국 바트화에 대해 3개월여 만에 순매도로 돌아섰다. 말레이시아 링깃, 필리핀 페소 역시 외국인 투자금이 빠져나가며 연일 약세다. 신흥국들은 석유 수입과 수출국여부와 관계없이 약세다. 석유 수입국가인 인도, 수출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모두 달러 대비 통화 가치 하락 현상을 겪고 있다.

신흥국 시장 통화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격화시킨 원자재 인플레이션 심화 현상이 경제를 더욱 옥죌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중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관광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 경기 활성화를 지연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빠질 수 없다.

미국도 시장 동요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세계 경제 대통령’인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신흥국 통화 가치 하락 신호 깃발을 든 탓이다. 파월 의장은 연준이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한번에0.5% 이상의 ‘빅스텝’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음을 공언했다. 이는 달러 강세 현상을 더욱 부추겼다.

막대한 달러를 비축 중인 중국 역시 안심할 처지가 아니다. 위안화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달러대비 강세를 보여왔지만 올해는 다르다는 평가가 많다. 제로 코로나19 정책을 3년간 이어온 피로감과 최근 오미크론 변이 감염 확산으로 인한 통제 확산은 중국 경제에도 먹구름을 드리웠다. 중국이 미국과 다른 방향의 통화 정책을 예고 중인 것도 불안요인이다. 중국은 돈을 풀겠다는 정책 의지를 시사 중인 반면 미국은 금리 상승을 통해 전세계 자금을 빨아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일본처럼 외환보유고가 충분한 한국의 위기 가능성은 과거와는 분명 다르다.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에서 최근 자금을 회수했지만 반대로 안전자산인 채권 투자를 늘리고 있다. 과거 IMF 위기를 앞두고 증시와 채권 시장에서 외국인들의 자금회수가 이뤄졌던 것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대만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CNN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후 3주 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은 대만 증시에서 약 4800억 대만달러(미화 169억달러) 상당의 주식을 매도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 규모를 초과한 규모다. 투자 업계에서는 대만의 상황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도 나쁘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만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불안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학습 효과지만 신흥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다음 차례는 중국의 대만 공격일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은행(BoA)은 대만을 둘러싼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외국인 자금 유출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외국인들에 비해 양안 갈등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는 대만 투자자들은 외국인들이 팔아 치운 주식을 사들였다. 지정학 위기에 둔감하다는 뜻이다.

유라시아 그룹도 이달 초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을 단기적으로 높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와 달리 대만은 반도체 생산의 중심지로 미국의 강력한 보호 대상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와도 맞물린다. 북한이 지난 24일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중단 약속을 폐기하고 ICBM을 쏘아 올렸다. 우드로윌슨센터의 수미 테리 한국학 연구센터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서 핵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결심을 한층 굳히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새 정부도 한국 경제 안정을 위해 외화 유출 가능성은 물론 북핵 위기를 관리해야 할 타이밍이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오피니언 부장



백종민 아시아경제 오피니언 부장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