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김동찬 기자] 요즘은 프로리그가 생겨 여건이 좀 나아졌지만 과거 당구선수만으로는 생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많은 선수들이 경제적 이유로 당구판을 떠나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지난 2월 PBA 챌린지투어 3차전에서 우승한 곽지훈 선수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당구가 좋아 선수로 등록했지만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변신, 10년차 영업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경제 여건은 나아졌지만 당구에 대한 꿈은 포기하기 어려웠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연습하는 일상을 거쳐 그는 6년만에 돌아온 당구판에서 대망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현업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프로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 곽지훈 선수를 만나 그간의 사연을 들어봤다.

당구선수에서 자동차 영업맨으로…‘기아자동차 영광제일대리점 곽지훈’

첫 인사를 나누고 그가 건네준 명함에는 자동차 영업사원의 이력이 적혀 있었다. 복장도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짓자 “옷 좀 갈아입고 오겠습니다”하더니 금새 프로당구선수의 면모를 갖추고 돌아왔다.

“2011년 수원에 있는 당구장에서 일하던 때였습니다. 오랜 지인을 만났는데 아버지가 자동차 대리점을 하신다며 자기 일 도와주면서 자동차 영업일도 해보라고 제안을 주셨어요. 당구장일로는 생계 해결이 마땅치 않던 상황이어서 이 참에 새 길을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응했지요.”

그렇게 당구장을 떠난 그는 2년여의 보조 기간을 거쳐 2013년부터 정식으로 기아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당구장에서 인연을 맺은 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자동차 구입할 일 있으면 저한테 연락을 주시고, 사람도 소개해주시고 그랬지요. 그 덕에 많을 때는 한 해 120대까지 팔아보기도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때 영업맨을 선택한 것이 내 인생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자동차 영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사실상 당구에서 손을 놓고 지냈다는 게 그의 회고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가끔 당구장에 들러 한두 게임 하는 정도였을 뿐 정식 대회에 나가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이 안정되어 가면서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당구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경제 여건이 갖춰졌다는 판단 아래 2017년 다시 당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지요. 낮에는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퇴근하면 곧바로 황득희 선배님이 운영하는 클럽으로 직행해 공을 굴렸습니다.”

현업을 유지하면서 당구선수 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앞으로도 계속 현업과 당구선수를 병행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당구를 둘러싼 주변 여건이 많이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당구만 잘 쳐서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톱클래스 선수가 될 수는 없잖아요. 최상급 선수가 있다면 그들과의 경쟁에서 패하는 하위 선수도 있기 마련입니다.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구인으로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를 준비해야 된다고요. 당구에만 올인할 경우 자칫 사회에서 배울 수 있는 다른 중요한 부분들을 놓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험난한 PBA 진출기…2부에서 3부로 추락

2017년 당구큐를 다시 잡은 그에게 들려온 프로당구(PBA) 출범 소식은 새로운 희망이었다. 하지만 PBA 진출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2018년 프로당구 출범 소식이 들리면서 주변 형님들이 프로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황득희 선배가 국내 랭킹 50위안에 들어 자동으로 1부 리그로 갔고, 저는 전국대회를 나가지 않았던 관계로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습니다. 트라이아웃이 2018년 4월이었는데 당시 아내가 만삭인 상태여서 연습을 많이 못했어요. 결국 트라이아웃을 통과하지 못하고 2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지요.”

2019년 2부 리그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그는 2021년 들어 3부 리그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는다. 그 때 당구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2020년에는 최고 성적 8강으로 2부 리그에 잔류했는데 마침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사내 아이 둘을 돌보느라 힘들어 하는 아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대회를 다 나가지 못했어요, 결국 3부 리그인 챌린지로 강등됐지요. 2021년 봄 강등이 확정됐는데 당시 눈물을 엄청 삼켰습니다. 다시는 당구를 치지 않겠다는 생각에 두세 달 동안 당구에 대해서는 말도 한마디 안 했어요.”

낙담해 있던 그에게 다시 힘을 불어준 사람은 아내였다.

“언젠가 아내가 ‘3부리그 등록했어?’라고 묻는 거에요. 그리곤 3부 리그에선 제대로 해보라며 응원을 해주더군요. 신기하게도 와이프가 편하게 인정해주니깐 그때부터 공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졌습니다. 자신감도 생겼고요. 어떻게 보면 아이를 키우면서 고배도 마셨지만 결국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도 아내와 아이들입니다.”

3부 리그에서 곽지훈은 안정을 되찾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온전히 연습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다. 오후 6시에 업무를 마치면 곧장 클럽으로 향해 연습에 매진한 결과 3차투어 만에 그는 정상에 올랐다. 꿈에 그리던 1부 리그 승격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스승도 없이 독학으로 시작한 3쿠션

그가 당구를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명절날 사촌형들이 당구장을 가는데 따라간 것이 계기였다. 그렇게 4구를 배운 곽지훈은 고등학교에 오르면서 3쿠션에 입문한다.

“고등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4구만 쳤습니다. 수지는 150점 정도 놓았지요. 고1때 처음으로 3쿠션 치는 모습을 봤는데 작은 공 3개로 치는 게 무척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3쿠션에 빠지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시절 내내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 때는 주로 중대에서 3쿠션을 쳤는데 군대 전역할 때쯤에는 40점을 놓고 쳤지요.”

그가 대대를 처음 접한 건 2008년이었다.

“대대 구장을 함께 간 선배가 처음이니 24점을 놓고 치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몇 개월 치다가 30점으로 올렸습니다. 대대에 입문하고 보니 정복을 입고 경기를 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이더군요. 그래서 바로 선수등록을 했지요. 2008년 당시엔 선수등록을 다 받아주던 시절이었습니다.”

대대 입문 몇 개월 만에 어떻게 30점까지 올릴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자신만의 연습 노하우가 있다며 스스로를 ‘독학파’라고 평가했다. 특정한 스승 밑에서 사사를 받은 적은 없고, 필요한 것은 스스로 터득해 자신만의 시스템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3쿠션 실전 책 같은 것을 사서 독학을 했습니다. 스승을 모시고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어요. 단지 상대를 이기고 싶다는 생각에 오기로 쳤지요. 그때부터 혼자 당구를 공부하던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기울기를 보면서 길을 찾아내는 저만의 방식으로 공을 칩니다. 포인트를 보면서 칸수나 공의 배열에 따라 라인을 찾는 나만의 시스템인데 이걸 다른 분들께 설명을 드리면 잘 이해를 못하시더라고요.”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훈련법으로 다른 선수들의 경기영상을 많이 찾아 본다고 했다. 자신과 다른 스타일의 선수 영상을 보면서 새로운 대응 능력을 터득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체크할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공을 대하는 자세가 좋은 선수들 위주로 영상을 찾아봅니다. 다비드 사파타(블루원리조트)나 다비드 마르티네스(크라운해태), 딕 야스퍼스(네덜란드) 선수의 경기를 자주 보는 편입니다. 공 하나 하나를 버리지 않고 꼼꼼히 치는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영상을 보면서 저 선수가 치기 전에 먼저 나만의 이미지를 그려봅니다. ‘이렇게 치면 공을 저기 떨어뜨릴 것 같은데’라고 미리 상상 해보는 거죠. 그렇게 영상을 보고 있으면 몸에 와 닿는 뭔가가 있어요. 저만의 이미지 트레이닝이죠.”

그는 연습 못지 않게 실전 경험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상대와 경기하면서 실제 시합에 대비할 수 있는 마인드 콘트롤을 연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습구장에서 한두 시간 동안 다양한 분들과 게임을 합니다. 당구는 속도가 중요한데 인터벌이 빠르거나 느린 사람과 게임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인트 컨트롤을 하게 됩니다. 여러 상대와 실전을 하면서 그때 그때 적합한 해법을 찾는 게 저만의 연습노하우라고 할 수 있죠.”

당구선수 곽지훈이 지난 22일 경기도 수원시 황득희 빌리어드클럽에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승부를 위한 멘탈 관리의 버팀목 ‘두 아들’

곽지훈은 중학생 시절 만난 아내와 19년 연애 끝에 2017년 결혼했다. 현재 다섯 살, 세 살배기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그가 경기 중 멘탈을 잡는데 큰 버팀목이 된다고 한다.

“당구는 멘탈 게임이잖아요. 경기에서 지고 있는데 내가 이걸 역전해서 반드시 이겨야겠다 생각한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승부를 받아들이는 것도 멘탈이고, 인상 쓰지 않고 웃는 것도 멘탈입니다. 저는 애들을 키우면서 멘탈이 많이 좋아졌어요. 육아를 하다 보면 화가 나기도 하고 참을 수 없는 상황을 만날 때도 있는데 그렇다고 화를 내서는 안되잖아요. 더 힘들게 육아를 하고 있는 와이프도 있는데 제가 어떻게 그래요. 이런 상황에서도 참을 수 있는 멘탈이 실제 당구 경기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의 목표는 올해 PBA 1부 투어로 올라가 성적을 내는 일이다. 1부 투어 승급의 기회는 챌린지투어 350여명 선수 가운데 단 3명에게만 주어진다. 총 6번의 투어 포인트를 합산해 3등까지만 1부로 갈 수 있다. 4차 대회까지 마무리된 상황에서 그의 현재 포인트 순위는 2등이다. 나머지 두 번의 투어에 최선을 다해 포인트를 올리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다.

“남은 대회를 잘해서 올 시즌 1부 투어로 가는 게 목표입니다. 1차전에선 부진했고 2차전에선 16강, 3차전에서 우승을 한만큼 남은 두 경기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둬 1부리그로 직행하고 싶습니다.”

3차전 우승 상황에 대해서는 워낙 정신이 없어 기억나는 부분이 없다고 했다. 다만 투어에서 우승하고 TV에도 나오다 보니 아내가 당구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된 것 같다며 “이게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2022 시즌, 꿈에 그리던 1부 리그에 올라 환하게 웃음짓는 세일즈맨 당구선수 곽지훈의 모습을 기대한다.

스포츠한국 김동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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