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이 지난달 25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이른바 ‘본부장’(본인·부인·장모) 비리 의혹을 겨냥한 특검 법안을 제출했다. 사진은 ‘처럼회’ 의원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대선 패배했는데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 아무도 없어”
 
“0.75%포인트 석패가 민주당에게는 독이 되는 모습”
 
“2021년 보궐선거 패배를 교훈으로 삼지 못한 것이 대선 패배로 이어졌음을 잊지 말아야”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11명이 지난달 25일 ‘윤석열 특검법’을 발의했다. 당내 강경파의 대표 주자인 김용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의 정식 명칭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과 윤 당선자 검사 재직 당시 각종 권력남용 및 그 가족의 부동산 투기, 특혜대출, 주가조작, 부정축재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법안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이른바 ‘본부장’(본인·부인·장모) 비리 의혹을 겨냥한 법안이다. 법안에 함께 서명한 의원들은 평소 민주당에서 강경파로 불리던 김용민, 강민정, 김남국, 김승원, 김의겸, 민형배, 박주민, 유정주, 이수진, 장경태, 최강욱 의원이다. 대다수는 의원 모임인 ‘처럼회’를 함께 하면서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에 앞장서고 윤석열 저격의 선봉에 섰던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법안에서 “윤 당선자 일가는 대장동 개발 관련 수사 무마 등 본인 비리, 허위경력 기재를 통한 사기죄 등 배우자 비리, 사문서위조 및 부동산 불법 투기 관련 당선자의 장모 비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시간에 걸친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검찰은 대통령 당선자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시간 끌기 수사, 봐주기 수사를 반복하면서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들의 의문이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공정한 특별검사 임명을 통해 윤 당선자에 대한 각종 의혹을 엄정히 조사해 그 진상을 신속하고 철저히 국민 앞에 규명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이 윤 당선인을 공격할 때 꺼내들었던 내용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패배로 끝난 대선 결과였지만, 이들의 행보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대선이 끝난 지 보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윤 당선인 일가를 겨냥한 특검법을 제출한 것은 사실상 대선 불복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당장 국민의힘 측에서는 “국회 의석을 민심에 역행하는 흉기로 쓰겠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새 정부 출발에서부터 발목을 잡아 보겠다는 저열한 의도”(김기현 원내대표)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 안팎에 흐르는 강경한 기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으로 가면 훨씬 노골적으로 대선 불복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개혁과전환 촛불행동연대’는 지난달 26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윤석열에게 경고한다. 불법 불통 국민무시 윤석열 규탄 시민촛불’이라는 집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윤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추진, 여성가족부 폐지 방침 등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선제 탄핵’을 주장했다.

아직 취임도 하지 않았기에 탄핵 사유가 되는 재임 중의 위법 행위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미리 ‘선제 탄핵’부터 외치는 전대미문의 장면이 벌어진 것이다. 이 단체를 주도하고 있는 김민웅 운영위원장은 집회 다음 날 이런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우리의 전투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우리는 다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단 하루 만에 우리 모두는 정신 차렸습니다. 난폭하고 막무가내인 자들을 매일 마주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는 비록 패해 상처가 크지만 우리의 전투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는 제2차 촛불혁명을 시작합니다.”

이들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에게 대선은 ‘전쟁’이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목표는 ‘제2차 촛불혁명’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근혜를 탄핵으로 끌어내렸듯이 윤석열도 탄핵으로 끌어내려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물론 현실적인 얘기로 들리지는 않는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민주당 계열의 의석수가 180석에 육박한다고 하지만,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의원들까지 합세하지 않으면 국회 가결이 불가능하다. 2016년 12월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던 것은 당시 상당수 새누리당 의원들까지도 찬성표를 던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설혹 국회에서 가결 통과된다 해도, 헌법재판소에서 7인 이상 재판관 중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탄핵이 확정된다.

그 전제는 탄핵을 당할 정도의 심각한 위법행위가 있었는가에 달려있음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 때 판례로 남아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일부 위반했으나 그 위반 정도가 탄핵 사유가 될 정도로 중대하지는 않다고 판단하고 소추안을 기각 결정했다.

그런데 취임도 하지 않은 윤 당선인에게 탄핵 요건이 성립하는 위법 행위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탄핵 주장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강성 지지자들이 벌써부터 탄핵을 거론하는 것은 대선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신들의 신념을 알리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들의 입장을 대선 불복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윤석열 특검법’을 대표 발의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제공)
24만여표 차이로 졌든 240만여표 차이로 졌든, 진 것은 진 것이다. 설혹 단 한 표 차이로 졌더라도 그에 승복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선거민주주의의 기본적인 룰이다. 우리가 그런 승복의 룰 자체를 부정하면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해진다.

다른 정당도 아니요, 우리 민주주의를 지켜온 역사를 자부하던 민주당 안팎에서 이런 불복의 기류가 흐르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대선 이후로 민주당 지도부가 보여준 모습이 그런 불복의 심리를 부추겨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선 패배 직후부터 민주당에서 회자됐던 말이 ‘졌잘싸’였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이 말은 불과 24만7077표(0.73%포인트) 차이로 패한 선거 결과에 대한 아쉬움, 안타까움, 자기 위안, 그리고 패배한 현실에 대한 불인정 등이 혼재돼 있다. 이 ‘졌잘싸’의 논리가 여권의 지도급 인사들 입을 통해 나왔다.

송영길 대표는 선대위 해단식 자리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에서도 우리 모두가 뛰어서 역대 최고의 득표율 성과를 거뒀다”고 의미 부여를 했다. 안민석 의원은 방송에 나와 대선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며 “뭐 10%, 20%로 갈라진 것도 아니고 0.7%로 갈라진 거 아니겠나”라고 6월 지방선거에서 이기면 된다는 얘기를 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많이 아프지만, 그래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면서 “충분히 의미를 남긴 선거였다”고 했다.

이재명 전 후보의 향후 역할에 대한 얘기들도 과거 선례들과는 많이 다르다. 몇 표 차이로 졌든, 일단 패장이 되면 한발 뒤로 물러서서 성찰이나 와신상담의 시간을 갖는 것이 대체적인 관행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에서는 이재명이라는 이름이 곧바로 등장한다. 김두관 의원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이재명 후보가 비대위원장을 맡아 민주당을 혁신하고 지방선거를 지휘해야 한다”며 이재명 조기 등판론을 제기했다.

그런가 하면 경기도 지사에 출마하려는 민주당 주자들 사이에서는 ‘이재명 마케팅’이 경쟁적으로 벌어진다. 조정식 의원은 “민주당과 이재명 지키기가 걸린 경기지사 사수를 꼭 이뤄내겠다”며 “이재명의 가치와 철학, 성과와 업적을 계승해 경기도를 ‘정치1번지, 경제 1번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경선 캠프 총괄본부장을 지냈던 조 의원은 ‘이재명을 지켜온 조정식’을 내걸고 ‘친 이재명계 좌장’이란 표현도 사용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이 전 후보가 자신의 지역구인 시흥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이재명과 동시선거’ 구상까지 언급했다.

역시 경기지사에 출마하는 안민석 의원은 “현 시기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는 착한 선비보다 강단 있고 돌파력 있는 이재명 같은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자신과 이 전 후보의 공통점을 알리고 있다. 엄태영 전 수원시장은 “일 잘하는 민주당 도지사, 이재명의 길을 이어가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게다가 이재명 전 후보가 대선이 끝나고 일주일 만에 민주당 비대위원들에게 ‘송영길 서울시장-김동연 경기지사’ 출마가 필요하다는 전화를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최근 제기된 ‘송영길 서울시장 차출론’과 ‘김동연 경기지사 출마설’이 이 전 후보의 의중이라는 얘기가 확인되지 않은채 돌았다.

그리고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미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 전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던 박홍근 원내대표를 필두로 민주당 원내 지도부가 ‘친이재명’ 인사로 채워졌다.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이 전 후보가 공천 같은 당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당의 요직을 자파 인물들로 채우려 할 때, 이낙연계나 친문계의 반발 등이 따를 수도 있는 문제다.

물론 당장 이 전 후보가 전면에 나서 당을 이끄는 역할을 하지는 않겠지만, 6월 지방선거의 지원유세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의 건재함을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현재 분위기라면 6월 선거에서 영향력을 보인 뒤, 8월 전당대회 때 당 대표로 출마하는 카드도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지난달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화상을 통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물론 아쉬운 석패에 대한 당내 정서에 따른 이 전 후보의 건재함이겠지만, 반대로 ‘민주당 대선 후보가 이재명이 아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평가들에 대한 성찰이 이런 광경들에서는 누락돼 있다. ‘졌잘싸’라는 논리 앞에서 어째서 민주당이 ‘10년 주기설’을 깨고 5년 만에 정권을 내주는 처지가 됐던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은 뒷전으로 밀려버리는 분위기다.

실제로 대선이 끝난 지 20여일이 지났지만, 민주당에서는 패배에 대한 통렬한 반성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개표 결과가 나온 직후 민주당에서는 잠시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론이 나오기는 했다.

송 대표는 “당 대표로서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자 한다”며 지도부 총사퇴를 발표했다. 하지만 책임지겠다며 물러난 전직 대표를 곧바로 서울시장 후보로 차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내 일각에서 나온다. 송 전 대표 또한 주저함 없이, “더 이상의 정치보복의 악순환이 되지 않게 막아내는 버팀돌의 하나가 되겠다”며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 추대’ 주장에 화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미 지난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정치개혁을 선언하면서 지방선거에 불출마할 것임을 선언했고,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던 송 전 대표가 곧바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모습이 시민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는 의문이다.

이미 지도부가 총사퇴하면서 윤호중 비대위원장 체제가 들어설 때부터 민주당의 안이한 모습은 지적당한 바 있다. 그동안 강성 ‘친문’(친문재인)으로 분류됐던 윤 위원장은 21대 국회에서 야당 패싱의 입법 독주를 밀어붙여 민심이반을 초래한 책임이 따르는 인물이었다. 그는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있으면서 공수처 출범, 민주당식 ‘검찰개혁’을 앞장서서 밀어붙였다. 그 결과는 편파 수사 논란만 불러일으키고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공수처의 무용론, 대장동 의혹 앞에만 서면 작아졌던 검찰에 대한 여론의 비판으로 나타났다.

또한 윤 위원장은 임대차 3법을 비롯한 부동산 관련법을 법사위에서 일방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때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역사서에 대한민국 국민이 집의 노예에서 벗어난 날로 기록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전세 가격의 급등과 부동산 시장의 불안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보궐선거 패배 직후 원내대표로 선출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협치와 개혁을 선택하라면 개혁을 선택하겠다. 협치라는 말은 저희가 선택할 대안은 아니다.” 당시 윤 원내대표가 말했던 개혁이 국민적 합의에 바탕한 개혁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민심 이반을 낳은 입법 독주의 책임을 지고 함께 물러나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민주당은 그에게 비대위원장의 자리를 맡긴 것이다.

이 전 후보와 단일화를 했고 이제 민주당과 합당을 하는 김동연 전 후보의 새로운물결에서도 “그는 2018년 총선에서 위성정당 사태를 주도했다. 정치개혁 의지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며 “민주당이 현 상황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윤 위원장 체제를 비판하고 나설 정도였다.

그런가 하면 이 전 후보의 지지자들은 대선 직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의당과 심상정 전 후보를 비난하는 글들을 쏟아냈다. 80만여표를 얻은 심 전 후보가 완주하지 않고 이 전 후보와 단일화했다면 승패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윤석열 당선의 1등 공신은 심상정’이라는 비난을 민주당 일부 지지자들이 정의당을 향해 퍼부었다.

정의당이 어째서 민주당 후보의 손을 들어줄 수 없었던가에 대한 자기반성은 없이, 선거 때만 되면 다른 정당들을 위성정당처럼 여기는 악습이 재연되는 모습이다. 소수 정당들이 민주당의 식민지는 아니지 않나.

대선이 끝나고 민주당이 달라진 것은 송영길이 윤호중으로, 윤호중이 박홍근으로 바뀐 것밖에 없다. 이 전 후보도, 송 전 대표도, 윤 위원장도, 아무도 진정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민주당의 모습은 대선 패배를 안겨준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냥 지나가는 오만으로 비쳐질 위험이 크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이런 모습들 속에서 대선 패배 결과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당 안팎의 대선 불복 기류들이 촉발되는 것이다. 패배에 대한 반성보다 ‘졌잘싸’의 외침이 민주당 안팎에서 더 크게 울려 퍼지는 이유다.

그러나 큰 선거에서의 패배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정치로는 더 큰 패배를 낳는 길임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대선에서의 연패라는 결과가 일깨워주고 있다. 큰 선거에서 연패를 해도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민주당의 모습이라면, 6월 지방선거에서 3연패를 당해야 정신을 차리게 될까 모르겠다.

대선 이후 민주당이 보여주고 있는 성찰 부재의 모습은 물론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일정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제 야당이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다시 국민의힘과의 여야 대결 구도를 만들면 설욕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일 것이다. 24만여표의 차이가 파놓은 함정이다. 마침 윤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면서 여론의 비판을 많이 받았다.

한국갤럽이 전국 1000명(유권자)을 상대로 벌인 지난달 넷째주(3월 22~24일) 정례 여론조사 결과, 윤 당선인이 앞으로 5년간 직무를 잘할 것이라는 응답은 55%로 나타났다. 잘못할 것이라는 응답은 40%였다. 역대 대통령 당선인들의 같은 시기 직무 수행 긍정 전망은 80% 내외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윤 당선인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낮음을 알 수 있다.

윤 당선인이 추진하는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36%가 찬성했고, 53%가 반대했다.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으로 비쳐진 ‘용산 이전’ 문제가 윤 당선인에 대한 기대치를 떨어뜨렸음을 읽을 수 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대선 이후 윤 당선인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여론의 추이를 감안한다 해도, 좀처럼 변할 줄 모르는 민주당의 태도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변화에 이토록 완고하고 경직된 민주당의 모습은 어디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일까. 아마도 강경파가 주도하게 된 당의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5일 국회 대표실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최근에 있었던 채이배 비대위원의 ‘문재인 반성문 발언’ 사건은 강성 주류와 다른 목소리는 허용되지 않는 민주당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채 비대위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나 현 정부 인사들이 사과하고 반성했어야 했는데, 강성 지지층 눈치를 보느라 대선 전 마지막 기회마저 놓쳤음을 지적했다. 그래서 채 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적어도 퇴임사엔 반성문을 남기고 떠났으면 한다”는 말을 건넸다. 이 말이 보도되자 민주당 내부가 발칵 뒤집혔다.

민형배 의원은 “채 위원의 망언은 참기 어렵다”며 “채 비대위원을 즉각 내보내시라”고 윤 위원장에게 요구했다. 급기야 고민정, 윤건영 의원 등 청와대 출신 14명의 의원들이 함께 채 위원의 발언을 비판하며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채 위원의 처신은 갈림길에 선 당의 진로를 고민하는 비상대책위원의 언사로는 매우 부적절했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문 대통령의 반성문’ 얘기를 꺼냈다가 곤욕을 치른 민주당의 현실은 성역을 침범하는 발언은 금기가 되어버린 민주당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에 ‘민주’가 없다는 말은 실제 상황인 셈이다.

평소 당내에서 쓴 소리를 잘 하던 박용진 의원은 대선 이후 민주당의 분위기를 이렇게 우려한다. “엄청나게 큰 부상을 입었는데,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 느낌이다. 통렬히 반성해야 하는데 스스로 격려하고 있다. 혁신해야 하는데 ‘잘 싸웠는데 왜 그러냐’고 한다. 그나마 반성하려고 하는 부분에서는 또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 국민이 보기엔 모두 동의가 안 되는 모습이다.”(<시사저널> 인터뷰)

민주당의 패배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고 뼈아픈 것이다. 5년 전 촛불시민들의 큰 기대 속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고, 보수정당은 궤멸 당하는 듯했다. 그런데 5년도 되지 않아 정권교체 여론이 단연 우위인 환경이 됐고, 민주당 정권 또한 ‘내로남불’의 적폐가 됐다는 비판을 받는 처지가 됐다. 지난해 보궐선거에서의 참패로 나타난 민심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했건만, 여전히 진영간 대결만 부추기는 네거티브에 매달리다가 결국 정권을 내주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전 후보가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석패한 것이 민주당에게는 독이 되고 있는 셈이다. 차라리 큰 표 차이로 패했더라면 민주당이 받는 충격은 더 컸을 것이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표 차이는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다는 자만심이 자리하게 됐다.

“개혁을 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180석으로 눈치만 보다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한 심판”(김용민 최고위원)이라며 검찰·언론 개혁에 다시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는 강경파들의 움직임도 그런 안이한 낙관론이 낳은 현상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내놓게 된 근본 원인은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만 듣다가 전체 민심을 등 돌리게 만든 정치 때문이었다. 이제 민주당이 가야 할 길은 민심을 균형 있게 읽을 줄 아는 정당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경파의 목소리만 울려 퍼지는 정당에서 탈바꿈해 합리적이고 균형 있는 목소리들이 공존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민주당은 자기 스스로의 변화를 기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구조가 돼버렸다. 강성 지지층이 당심을 좌우하는 구조가 된 것은 당의 권력질서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러니 당의 평형수 역할을 할 소신 있는 정치인을 찾는 일은 이제 민주당에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못하기만 기다리며 반사이익만 노리는 민주당에게는 앞길이 있기 어렵다.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스스로 변화할 것인가, 변화를 거부한 채 나락의 길을 갈 것인가. 민주당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