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소송 대응 나선 현산…비정기 세무조사로 칼 빼든 국세청

지난달 30일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본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HDC현대산업개발이 건물 철거 중 붕괴로 사상자가 발생했던 작년 광주 학동 사건을 이유로 영업정지를 받았다.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건의 경우 정부에서 건설업 면허 등록 말소를 직접 시사하고 나서 처벌 수위가 한층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붕괴사고로 건설업 면허가 박탈된다면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일으킨 동아건설산업 이후 처음이다.

시민 덮친 학동 참사 영업정지 8개월

현산은 작년과 올해 자신들이 맡은 건설 현장에서 잇달아 인명사고를 내면서 비판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해 6월 9일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구역에서 철거공사 중 붕괴로 일대 시민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쳤다. 올해 1월 11일에는 신축공사 중이던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201동이 무너져 작업자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최근 서울시에서 발표한 처분은 작년 학동4구역 사고에 대한 처분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해당 사고와 관련해 현산에 부실시공 혐의를 적용해 8개월 영업정치 처분을 내렸다. 한제현 서울시 안전총괄실장은 “광주 학동 철거공사 붕괴사고는 우리 사회 안전 부주의와 불감증이 여전함을 보여준 사고”라며 “다시는 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부실시공 등에 대해선 엄격한 책임을 물을 것이며 현장의 잘못된 관행도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은 건설사가 고의나 과실로 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하여 시설물의 구조상 주요 부분에 중대한 손괴를 발생시키거나 일반 공중(公衆)에 인명피해를 끼친 경우 지자체가 영업정지 8개월을 처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시 현산은 해체계획서와 다르게 시공해 구조물 붕괴원인을 제공하고, 과도한 살수에 따른 성토층 하중 증가 등을 관리,감독할 의무를 위반한 점이 부실시공의 근거로 인정됐다.

학동4구역에서 현산이 하도급을 준 한솔기업에 대한 '하수급인 관리의무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관할 자치구인 영등포구청의 처분이 이후 결정될 예정이다.

현산 행정소송 대응... 서울시 후속 처분 ‘눈길’

현산이 영업정지에 행정소송으로 맞대응하면서 실제 처분 적용은 처분의 적법성을 다투는 본안소송 이후로 미뤄질 전망이다. 서울시 영업정지 처분 직후 현산은 “행정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및 행정처분 취소소송으로 대응하겠다”며 “영업정지 행정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행정처분 취소소송의 판결 시까지 당사의 영업활동에 영향이 없다”고 공시했다.

집행정지 가처분은 행정처분을 정지하지 않을 경우 본안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하더라도 이미 큰 손해를 볼 경우, 또는 처분의 효력을 정지하더라도 공공에 큰 해를 미치지 않을 경우 보통 받아들여진다. 취소소송은 붕괴 사고에 따른 피해 사실과 현산 고의·과실의 관련성 입증 여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김태현 변호사(LK법률사무소)는 “현산 영업정지와 관련한 집행정지신청은 인용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라며 “취소소송은 처분사유인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부실하게 시공함으로써 시설물의 구조상 주요 부분에 중대한 손괴를 발생시키거나 일반 공중에 인명피해를 끼친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서울시 처분의 취소 또는 현산 청구의 기각 형태로 판결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처분사유의 유무를 따질 때, 고의나 과실이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한 부분, 건물철거가 진행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부실하게 시공한 경우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부분이 재판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는 이어지는 서울시 행정처분 결정에서 건설업 면허 등록말소 가능성까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어 주목된다.

영업정지의 경우 처분 이후 신규사업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해 이전에 현산이 수주한 건설 사업은 진행할 수 있다. 현산은 지난해말 기준으로 매출액의 약 10배에 해당하는 33조6348억원의 수주잔고(일감)를 보유하고 있다. 화정 아이파크 사고 이후 수주한 안양 관양동, 월계 재건축 등 약 7000억원 규모의 정비사업 역시 추진 가능하다.

등록말소 역시 건산법 제14조 규정에 따라 기존 수주 사업은 진행 가능하나 ‘아이파크’ 브랜드를 사용할 수 없다. 새로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라도 그동안 쌓은 실적이 사라져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입찰 참가에 중요한 요소는 과거 실적이다. 특히 300억원 이상의 종합심사제에서는 실적을 높게 평가한다"며 "등록말소가 되면 이런 실적이 모두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유사한 이름으로 새로운 법인을 만들어도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세청은 현산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31일 국세청은 서울 용산구 현산 본사에 직원들을 파견해 관련 자료 등을 확보했다. 일반적인 정기 세무조사가 아닌 비정기 특별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총에서 주주·시민들 비판 목소리 이어져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현산 정기 주주총회에는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와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양대노총 등에서 온 주주들이 참석해 부실시공 사태에 대해 정몽규 HDC 회장 등 경영진의 책임을 지적했다.

이재승 현대산업개발 노조위원장은 "직원들의 급여는 10대 건설사와 비교해 업계 최저 수준이고 노동 인력도 부족하다"며 "정몽규 회장이 퇴직금을 받고 회사를 떠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하며 정 회장의 퇴직금 반납을 촉구했다.

이날 권순호 대표이사는 "뼈아픈 반성과 엄중한 책임감으로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고, 환골탈태하는 각고의 노력으로 소비자와 주주 여러분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하면서 연단에 나온 임원진과 함께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광주지역의 3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현대산업개발 퇴출 및 학동·화정동참사시민대책위’는 지난달 31일 성명을 내고 화정 아이파크 사건에 대해 서울시에 엄격한 추가 처분을 촉구했다. 시민대책위는 “서울시는 가장 높은 수위의 행정처분을 내렸지만 조치가 늦어진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며 “학동사고에 대한 행정처분이 늦어지면서 현산의 안전을 도외시한 부실공사가 방치됐고 화정동 사고로 이어졌다. 화정동 사고에 대한 행정처분은 이런 과정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