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칼럼]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선택인가 운명인가
기사입력 2021-01-25 09:15:16
데이터로분석한 2021년서울시장보궐선거단일화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장 선거는 대선 전초전이다. 오는 4월 7일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은 후보자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원래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는 예정된 일정이 아니었다. 지난해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 비위 의혹으로 물러나고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생겨난 정치적 이벤트다.

이유야 무엇이든 간에 서울과 부산은 여야가 사력을 다하는 전쟁터가 될 조짐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보궐 선거 결과는 민심의 척도가 된다. 경기도 다음으로 많은 유권자들이 사는 곳이 서울이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서울시장이 소속된 정당의 대선 후보가 서울에서 더 많은 득표를 했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는 서울에서 후보들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었는데 당시 서울시장은 민주당의 조순 시장이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는 더 극적이었다.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패했지만 서울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했다. 서울시장은 한 해 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 전 시장이었다. 그래서 서울시장 선거를 대선 전초전 또는 미니 대선으로 보는 이유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국회의원 총선거는 여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었다.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대통령 지지율이 60%대 이상으로 고공 행진을 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환경이면 여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가 된다. 선거 구도는 정권 심판이 아닌 정권 안정 쪽에 더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표는 지난 연말부터 매우 불안한 상태다.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를 받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을 분석해 보았다. 올해 들어 지난 1월 4~6일 조사에서 대통령의 긍정 지지율은 35.1%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렇지만 지난 1월 18~20일 실시한 조사에서 43.6%로 반등했다[그림1]. 호남, 40대, 화이트칼라(사무직) 지지층이 결집하고 중도층이 부분적으로 회복된 결과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 18일 열린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결정적이다. 그동안 대통령의 지지율이 크게 하락한 근본적인 원인을 소통 부족에서 찾는 목소리가 높았다. 약 2시간에 걸쳐 미리 질문자를 지정하지 않는 ‘각본 없는 드라마’로 진행된 신년 기자회견은 분명한 소통 효과를 거두었다.

대통령의 지지율에 가장 영향을 주는 변수는 경제, 북한, 공약이다. 최우선 공약은 검찰 개혁인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결정되고 청문회까지 마쳤다. 가장 중요한 성과를 만들어 낸 모습이다. 1년 이상을 끌어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의 갈등은 일단락됐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 회견에서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더 이상 정치적인 ‘윤석열 때리기’가 없다는 의미다. 검찰 관련 갈등도 가라앉는 양상이다. 코로나 재유행 악재는 연초 특별 방역 효과로 점점 확진자 수가 줄고 있고 정부는 기존 5600만명 분의 백신 확보에서 2000만명 분을 더 늘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정부의 코로나 백신 공급 확보 및 검찰 개혁 성과가 하나 둘씩 만들어지면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한 보수 야권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고무됐을지 몰라도 대통령 핵심 지지층은 여전히 살아 있다. 서울시장 보궐 선거의 핵심 변수는 여권은 대통령 지지율이고 보수 야권은 단일화다.

  • 왼쪽부터 박영선 전 장관,오세훈 전 서울시장, 나경원 전 의원, 우상호 의원. [연합뉴스]
유력 후보들의 출마가 가시화되면서 선거판은 점점 뜨거워 지고 있다. 지난 20일 부분 개각에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사의를 표명했다. 동시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 경선은 박 전 장관과 우상호 의원의 양자 대결 구도가 되는 방향이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한 신문에서 여권의 다크호스로 주목했지만 불출마가 유력시 되고 있다.

보수 야권은 집권 여당보다 훨씬 많은 후보가 도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출마를 선언했고 국민의힘 후보로 나경원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외에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던 조은희 서초구청장, 김근식 경남대 교수 등이 있다. 모두 역량을 갖춘 후보지만 국민의힘에서 나 전 의원과 오 전 시장이 선거 초반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안 대표와의 단일화 논의는 국민의힘 후보가 결정되고 난 3월 4일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장 선거 초반 판세는 안 대표가 앞서 가고 있고 나머지 후보들이 쫓아가는 추세다. 입소스가 SBS의 의뢰를 받아 지난달 31일과 이달 1일 실시한 조사에서 ‘누가 서울시장이 되는 것이 가장 낫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안 대표가 24.1%로 1위를 기록했고 박 전 장관이 15.3%로 나타났다. 그 뒤로 오 전 시장, 나 전 의원, 우 의원 등의 순이다[그림2].

그렇지만 조사 시점이 안 대표와 우 의원을 제외하고 유력 후보들이 공식적인 출마선언을 하기 이전이고 어느 한 후보가 압도적이지도 않다. 조사할 당시의 대통령과 정당 지지율이 현재 수치와 다른 점을 감안한다면 시시각각 판세는 달라진다. 판세는 향후 달라지더라도 달라지지 않는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단일화다. 각 당의 최종 후보가 결정되고 진보와 보수 진영의 판세가 50 대 50의 대결 구도가 된다면 양쪽 모두 단일화는 필수다.

진보 진영은 민주당과 정의당의 단일화가 필수적이다. 정의당 후보가 5%내외 득표를 한다고 가정한다면 진보와 보수의 박빙 대결에서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진보든 보수 진영이든 단일화에 가까운 표의 결집이 필요한 것이 선거다.

역대 주요 대통령 선거를 통해 단일화가 불가피한 사례를 분석해보았다. 1997년 대통령 선거는 단일화가 선거 승리의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선거였다.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직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4년이 흐른 뒤 1996년 정계에 복귀한 김 후보의 대선 가도는 승승장구가 아니라 첩첩산중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있기 직전인 1996년 총선 성적표는 신통치 않았다. 김 후보가 이끌었던 새정치국민회의는 대선 1년 전 총선에서 고작 79석에 그쳤다. 김 총재가 전국구 14번으로 나섰지만 낙선할 정도는 총선 결과는 난망했다. 3당 구도에서 자유민주연합을 이끌었던 김종필 총재는 50석을 확보하며 존재감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2016년 총선에서 얻은 국민의당 의석보다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정도로 지역을 기반으로 한 3당의 영향력을 입증한 선거였다.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김 후보의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도로 전개됐다. 현직인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었지만 김 대통령과 스타일을 달리하는 이회창 후보쪽으로 더 결집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이 후보는 ‘대쪽 판사’로 잘 알려져 있는데 김영삼 정권이 아닌 전두환 정권에서 생겨난 별명이다. 군사 정권의 부당한 청탁과 압력에 굴하지 않고 소신 판결을 내리면서 붙게 된 훈장 같은 별명이다. 김영삼 정부 들어와 감사원장과 총리를 역임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인기가 시들해진 김 대통령과 달리 이 후보는 보수 지지를 결집하는 후보였다.

동아일보가 동서리서치의 의뢰를 받아 1997년 7월 21일 실시한 조사에서 ‘거론되는 후보 중 누구에게 투표하겠는지’ 물어보았다. 새정치국민회의의 김 후보가 26.6%, 한나라당의 이 후보가 40.4%,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후보가 7.1%로 나타났다[그림3].



만약 조사 시점이 선거일이었다면 이 후보가 당선됐을 것이다. 김대중 후보와 김종필 후보의 예상 득표율을 합해보아도 이 후보에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같은해 12월 18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승자는 김대중이었다. 김 후보는 단일화보다 더 강력한 ‘DJP(김대중-김종필-박태준) 연합’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후보와 김종필 후보가 연대하고 여기에 보수 성향의 박태준까지 가세하면서 대선 득표율은 40.3%로 나타났다. 그해 7월에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보다 약 14%포인트 더 높은 결과였다.

반면에 이 후보는 38.7% 득표하며 무릎을 꿇었다. 가장 큰 패인은 단일화는커녕 보수 분열이었다. 이 후보와 같이 경선에 참여했던 이인제 후보가 경선에 불복해 탈당하고 국민신당을 창당했다. 이인제 후보는 돌풍을 일으키며 선전했지만 득표율은 채 20%를 넘지 못했다. 같은 당이었던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의 득표를 합하면 거의 60%에 가깝다. 두 명의 이 후보가 분열이 아닌 막판 단일화를 선택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대선에서 보듯이 선거 승리의 기본 중의 기본은 후보 분열이 아닌 후보 통합에 있다.

이전 선거에서 보는 두 번째 단일화 사례는 2002년 대통령 선거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대통령 선거에서 정당 최초로 국민 참여 경선을 실시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흥행몰이에 유리하고 당원들과 국민들의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효과가 있는 방법이었다.

국민 참여 경선 과정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많은 인상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노무현 당시 경선 후보는 문재인을 가리켜 자신의 친구라고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권양숙 여사 아버지의 색깔론이 불거지자 ‘그렇다면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는 역설적인 답변으로 당원과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다. 마치 한 편의 역전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전세를 반전시키며 마침내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했던 노 후보가 여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

보수 야당은 간단했다. 4년 전과 같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였다. 대통령 선거를 두 번째 도전하는 후보였다. 2002년 들어 한나라당은 정당 지지율까지 앞서며 ‘이회창 대세론’을 만들어나갔다.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 이회창 대세론은 꽤 유력하게 퍼져나갔다. 같은해 5월에 있었던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노 후보의 대선 지지율은 급격히 흔들렸다. 지방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후보는 지방 선거에서 승리하며 대세론이 더욱 굳어져 나가는 국면이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다크호스가 당시 정몽준 국민통합21 의원이었다. 축구협회장으로 한일 월드컵 유치와 개최를 주도하며 전 국민의 관심이 모아졌다. 정치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포츠인 축구의 상징처럼 정 후보의 주가는 올라갔다. 단순히 체육계 또는 정치 인사가 아니라 대통령감으로 국민들은 주목했다. 이른바 ‘월드컵 효과’ 였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최고 성적인 4강에 올라가며 국민들의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정 의원이 대통령 선거 출마를 결정하면서 지지율은 더욱 올라갔다. 대선을 3개월여 앞두고 실시된 선거 여론조사에서 정 후보와 이 후보는 거의 비슷한 지지율을 보일 정도였다. 동아일보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서 2002년 9월 5일 실시한 조사에서 ‘누구를 지지하는지’ 물어보았다. 이 후보가 30.2%, 정 후보가 29.5%, 여당인 노 후보는 17.6%로 3위로 처졌다. 이 여론 조사의 결과대로 대선까지 갔다면 노무현의 대통령 탄생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를 한 달도 남겨 두지 않은 그해 11월 24일 단일화 조사가 실시되고 노 후보가 최종 단일화 후보로 결정되면서 선거판의 대전기가 마련됐다. 단일화의 위력은 엄청났다. 선거일 전날 정 후보의 단일화 철회 발표가 있었지만 대세는 바뀌지 않았다. 노 후보는 선거에서 48.9%를 득표했고 이 후보는 불과 2.3%차이로 낙선했다[그림4]. 단일화가 없었다면 노무현 시대는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단일화가 선거 승리에 얼마나 중요한 방법인지를 증명하는 역사적인 사례가 됐다.

선거에서 단일화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세 번째 사례는 바로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선거일이 12월이 아니라 5월이었다. 장미꽃이 이때 핀다고 해서 ‘장미선거’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으로 물러나고 조기에 치러진 선거였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선거이므로 선거 초반부터 촛불민심은 문재인 민주당 후보쪽으로 모아졌다. 민주당내 경선은 문 후보, 안희정 후보, 이재명 후보, 최성 후보로 진행됐다. 문 후보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지만 안 후보와 이 후보가 경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꽤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뻔한 토론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지지층들의 관심을 묶어내는데 성공적이었다.

반면에 보수 야당쪽은 한마디로 경황이 없는 시간이 무작정 흘러갔다. 새누리당은 의원들의 탈당과 대선 준비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나누어졌다. 자유한국당의 대선 후보는 경남지사를 맡고 있었던 홍준표로, 바른정당은 유승민 의원이 출마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대선전에 뛰어들었다. 대통령 선거를 한달 여 앞두고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문 후보가 가장 앞서는 결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이데일리의 의뢰를 받아 2017년 4월 8~9일 실시한 조사에서 ‘후보 중 누구에게 투표하겠는지’를 물어보았다. 문 후보가 41.1%로 가장 높았다. 실제로 5월 9일 선거 결과 문 후보는 41.1%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안 후보가 34.8%로 그 다음이었고 홍 후보는 8.6%로 나타났다[그림5].

대선 득표율은 오히려 홍 후보가 안 후보보다 높았다. 대선 득표만 놓고 보면 홍 후보와 안 후보의 지지율을 합하면 문 후보의 득표보다 더 높았다. 산술적으로 결과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여론 조사 지지율을 합하더라도 문 후보보다 더 높다. 결국 보수 진영은 홍준표와 안철수로 나누어지면서 문 후만?이길 수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를 사후적으로 분석할 때 진보 진영은 문재인으로 최대한 결집을 한 반면 보수 진영은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으로 나누어진 모습이다. 뭉치면 이기고 흩어지면 지는 결과다.

기본적으로 선거는 구도, 이슈, 후보에 달려 있다. 기본 중의 기본은 역시 구도다. 이것은 대통령 지지율에 달렸다. 선거가 있는 지역의 문 대통령 지지율이 30% 미만이라면 여권 후보가 구도상 불리해진다. 왜냐하면 정권 안정보다 정권 심판 성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초부터 문 대통령 지지율은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산적한 악재들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해 들어 문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변화를 주고 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라는 발언은 검찰 개혁 관련 갈등을 해소하는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 관련 발언 이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반등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 생각에 잠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최고위 발언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연합뉴스]
대통령 지지율은 여야 모든 예비 후보들에게 중요한 지표다. 유권자들의 투표 기준을 설정하는 감성적인 잣대가 된다. 그것만큼이나 선거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후보자 관련 구도다. 한 후보로 지지층이 결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후보로 흩어진다면 선거 승리는 요원해진다. 부산시장 보궐 선거 역시 마찬가지이겠지만 서울시장 선거는 양쪽 모두 지지층을 결집할지가 최우선 과제다. 민주당은 진보 진영 지지층을 얼마나 결집할지가 관건이고 야권 보수 진영은 단일화가 최대 이슈다. 안 대표는 자신이나 다른 정당의 후보까지 국민의힘 서울시장 보궐 선거 플랫폼에 참여할 방안을 제시했지만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난색을 표했다. 야권 후보 모두가 동시에 참여하는 플랫폼이 되면 안 대표에게 좀 더 유리한 플랫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야권에서는 각 당에서 최종 후보를 결정하고 3월 4일 이후 단일화를 시도한다는 구체적인 제안까지 나오고 있다. 여권과 보수 야권 모두 단일화 형식의 지지층 결집은 불가피해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여파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마음은 가까이, 몸은 멀리’라는 슬로건에 익숙하다. 그러나 이 슬로건과 달리 오는 4월 서울시장 보궐 선거는 ‘단일화는 가까이, 불협화음은 멀리’라는 새로운 슬로건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단일화는 하면 좋고 안 하면 그만인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가져가야 할 운명이라서 그렇다.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정치컨설팅업체인 인사이트케이를 창업해 소장으로 독립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 AD

하루 동안 많이 본 기사

  • 이전
  • 다음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