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사라진 제3지대...과연 안철수의 시간은 다시 올까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서로 원하지 않는 합당?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연일 국민의당을 압박하면서 사실상 일방적 통보처럼 발언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 대표는 자신의 휴가 일정을 앞세워 ‘8월 버스 탑승론’을 제기하고 데드라인을 정했다. 자가격리 중인 안 대표와의 담판을 요구한데 이어 지난 3일 페이스북에서는 “(안 대표는) 만나는 것에 대해서 예스(Yes)냐 노(No)냐 답하시면 된다”고 고삐를 죄고 나섰다. 이 대표는 다음 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꼭 요란한 승객들을 태우고 (버스가) 가야 하느냐”며 “합당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어보인다”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국민의당은 격앙된 분위기다. 이태규 국민의당 사무총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이 사무총장은 지난 3일 같은 라디오 방송에서 ‘갑질 사고’ ‘기고만장’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이 대표는 우리 당원들과 지지자들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그런 말들을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당세로 봐서 우리당이 돈과 조직이 없지 무슨 가오(자존심이나 체면을 의미하는 일본어)까지 없는 정당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발끈하기는 안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안 대표는 지난 4일 오후 중앙일보 유튜브 '강찬호의 투머치토커' 생방송에 출연해 “‘예스냐 노냐’ 이런 말을 누가 한 것 같다”며 “그 말이 원래 2차대전 때 일본이 싱가포르를 침략했을 때 야마시타 중장이 ‘예스까 노까’, ‘항복할래 말래’ 역사적으로는 그런 뜻”이라고 불쾌감을 표출했다. 에둘러 이 대표의 고압적 태도를 비난한 것이다.
양당의 합당은 지금까지 분위기로 보면 양당 모두 간절한 목표가 아닌 것처럼 비쳐진다. 국민의힘은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 이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입당으로 한결 여유가 있는 모습이다. 반면 안 대표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답답해졌다.
여기에 안 대표의 ‘딜레마’가 깊어지고 있다. 우선 자신의 강점이었던 중도층을 기반으로 한 ‘제3지대’ 구상이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윤석열-최재형’ 카드를 앞세워 제3지대 영역을 공고하게 확장하려던 계획 자체가 엉클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대선 경험이 있는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지율도 낮은 상태에서 당장 합당을 할 경우 국민의힘 내부 경선에서 또 하나의 예비후보로 전락해 존재감이 미미해질 수 있다”며 “경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보장도 사실은 없다는 점이 고민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만약 안 대표가 재보궐선거에서 합당을 결단했으면 지금 서울시장 자리를 꿰차고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합당 시기를 이미 실기했다는 해석이다.
국민의당, ‘플랜B’로 안철수 독자 출마론 흘려
또 다른 딜레마는 국민의힘과의 합당이 당장 어려워질 경우 ‘플랜B’ 문제이다. 플랜B는 사실상 안 대표의 독자출마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점이다. 국민의당 대선 주자로 나서 국민의힘 최종 후보와 야권통합 단일화를 놓고 겨루는 방법이다.
합당 과정에서 국민의힘과 감정의 골이 깊어진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공공연하게 안 대표의 출마론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 3일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지금으로선 안 대표가 대권후보로 출마해서 (합당을 통한 열린 플랫폼으로 대체하려던) 그런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권의 외연 확장을 위해 안철수의 역할이 다시 필요한 것 아니냐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사무총장도 이날 CBS 라디오에서 안 대표의 대선 출마와 관련해 “많은 분들이 다 대선에 나가야 된다고 생각을 한다”며 “전체 야권 대통합 과정에서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의견을 다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안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당헌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국민의당 당헌 제75조에서는 대선 후보 출마자의 경우 대선 1년 전까지 모든 선출직 당직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헌 개정을 하지 않으면 안 대표의 대선 출마는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일단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중앙일보의 유튜브 생방송에서 안 대표는 독자 출마론에 대해 “개인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당에서 의논해본 적도 없다”며 여러 가능성을 놓고 의견을 낸 것으로 이해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상황 변화’는 국민의당 입장에서 볼 때 앞으로도 유효한 카드가 될 수 있다. 국민의힘측에서 계속 고압적 태도를 유지해 정상적인 합당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독자 출마를 감행해도 안 대표의 딜레마는 여전히 남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안 대표의 지지율은 2%대에 머물고 있다. 물론 여야 후보가 ‘1 대 1’ 구도로 가는 대선의 경우 2%의 지지율은 당락을 좌우할 수 있는 캐스팅 보트 역할이 가능하다. 그 점이 국민의힘과 계속 샅바 싸움을 할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지율이 반등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고민이다. 독자 출마를 한 후 국민의힘측과 야권후보 단일화를 할 때 과연 승리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느냐는 당 안팎의 의구심이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에서 어떤 경우이든 승부를 내지 못할 경우 안 대표의 대권 ‘삼수’는 요원한 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또 다른 딜레마이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