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 16일 오후 전북 전주시 덕진군 전주역에서 열린 ‘통합하는 대통령 전북을 위한 진심!’ 전주 거점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후보의 발언은 논란 자초해 여당 지지층 결집 낳는 패착”
“원론적 발언에 격앙돼 사과 요구한 문재인 대통령 모습도 지나친 대응”
“구체적 사건 놓고 판단해야지 정치적 예단으로 다툴 문제 아냐. 당사자들 절제 필요”
문재인 정부에는 적폐라는 것이 존재할까, 아닐까.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폐수사를 하겠다면 그것은 법치의 실현일까 아니면 정치보복일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적폐수사’ 발언이 대선 한복판에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윤 후보는 지난 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선 뒤) 적폐수사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해야죠, 해야죠, 돼야죠”라고 대답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물론 특정 사건을 가리킨 것은 아니고,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은 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는 얘기이니 어쩌면 당연한 원론적 얘기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사하겠다는 말을 세 번씩이나 반복한 것을 보면, 그냥 나온 얘기는 아니고 확고한 수사의지를 마음 속에 갖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윤 후보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의 적폐에 대한 수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 발언이 있자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정치보복 선언’으로 규정하며 대대적인 공세를 벌였다. 민주당 선대위는 긴급 성명을 내고 “윤 후보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노골적 정치보복을 선언했다”며 “윤 후보는 발언을 취소하고 국민 앞에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도 직접 나서 “듣기에 따라서는 정치보복을 하겠다고 들릴 수 있는 말씀이어서 매우 당황스럽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정치보복’ 얘기를 꺼냈다. 윤호중 원내대표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윤 후보가 마침내 검찰공화국의 야욕을 낱낱이 드러냈다”며 “윤 후보가 집권하면 분명히 조폭 정치가 난무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이해찬 전 대표는 “만일 문재인 정부에 적폐라 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윤 후보에게 있을 텐데, 어디 감히 문재인 정부 적폐란 말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라며 ‘감히’라는 감정적 용어까지 사용하며 비난하고 나섰다.

듣기에 따라서는 원론적인 발언일 수도 있고, 윤 후보가 먼저 꺼낸 얘기가 아니라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였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이렇게까지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이유는 두 가지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다.

첫째는 윤 후보의 지지율이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실제로 그가 정권을 잡게 될 경우 지금의 여권세력을 향한 사정정국이 도래될 것에 대한 우려가 클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를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일종의 도발로 해석해온 민주당에게 윤 후보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물로 생각될 것이다.

일단 수사를 시작한 사건에 대해서는 집요할 정도로 파헤치던 ‘윤석열 검사’의 모습을 기억하는 여당으로서는 기우가 아닌 실제 공포로 느껴질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다면 아마도 검찰을 앞세운 복수혈전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로 보인다.

두 번째로는 지지층의 결집을 노린 확대재생산의 측면이 다분히 있어 보인다. 이 후보는 아직까지도 민주당 전통적 지지층을 제대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친문’(친문재인)층 가운데는 여전히 이 후보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을 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까스로 이낙연 전 대표가 총괄선대위원장을 맡는 수준까지 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민주당 지지층 내부의 화학적 결합은 미진한 상태이다. 그런 민주당에게 윤 후보의 발언은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셈이다. 무엇보다 퇴임 후의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친문’층이 이 후보에게로 결집해줄 것을 기대했을 법하다.

실제로 윤 후보의 발언과 그에 대한 여권의 대대적인 공세를 거친 이후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 효과가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6∼11일 전국 성인 3040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다자구도에서 윤 후보는 41.6%, 이 후보는 39.1%를 기록했다.

윤 후보는 전주 조사(2∼4일)에서 이 후보보다 5.3%포인트 앞섰지만 1주일 만에 1.8%포인트 하락하고 이 후보가 1%포인트 상승하면서 다시 격차는 오차범위 이내인 2.8%포인트로 좁혀졌다. [그림1]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1.8%포인트.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같은 지지율 변화에는 윤 후보의 적폐청산 수사 발언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윤 후보 발언이 있은 뒤인 지난 10~11일의 조사에 대한 11일 집계에서는 이 후보 41.4%, 윤 후보 38.4%로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된 것으로 나타나, 적폐수사 발언의 역풍이 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전문위원은 “윤 후보의 적폐청산 발언으로 여권 지지층이 결집하고 중도층 일부도 이 후보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진 현상은 비슷한 기간에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의 의뢰를 받아 지난 11~12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후보의 지지율은 43.5%로 직전 조사에 비해 1.1%포인트 하락했다. 이 후보 지지율은 2.0%포인트 오른 40.4%였다. 일주일 전 오차범위 밖으로 벗어났던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3.1%로 다시 오차범위 내(±3.1%포인트)로 좁혀졌다.

서던포스트가 CBS 의뢰로 지난 12일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10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이 후보는 직전 같은 조사보다 3.3%포인트 상승한 35%, 윤 후보는 1.3%포인트 하락한 35.5%를 기록했다. 오차 범위 내의 초접전 상황으로 나타난 것이다.

피플네트웍스리서치(PNR)가 뉴데일리 의뢰로 지난 11~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20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이 후보는 전주 대비 2.6%포인트 상승한 40.3%, 윤 후보는 1.4%포인트 하락한 46.6% 지지율을 보여 지지율 격차가 좁혀졌다. (여론조사들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실제로 윤 후보의 적폐수사 발언과 민주당의 맹공으로 여당 지지층 결집 효과가 어느 정도 나타난 것으로 판단된다. 아무리 인터뷰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고 구체적인 내용은 없는 원론적인 얘기였다고 하지만, 여론조사 선두를 지키고 있는 야당 유력 후보의 입에서 적폐수사를 할 것이라는 발언이 나온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마치 정권을 잡기라도 한 듯 오만한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적폐수사를 할지 말지는 다음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구체적인 사안의 내용을 갖고 판단할 일이지, 미리 예단해 기정사실로 말할 성질은 아니다. 그리고 차기 정부가 들어선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의 적폐가 드러나는 것이 있다 해도, 수사 여부에 대한 판단은 수사기관이 하는 것이지 대통령이 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관여 안 한다”, “다 시스템에 따라 하는 것”이라고 윤 후보는 말했지만 적폐수사를 하겠다고 못 박는 일이 이미 자신이 관여하는 것으로 비쳐짐을 생각했어야 했다.

선거 전략상으로 보더라도 적절하지 못했다. 아직까지 이 후보의 지지율은 문 대통령의 지지율에 미치지 못한다. 문 대통령 지지층 가운데서도 이재명을 찍기 싫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마당에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적폐수사를 하겠다는 말을 꺼냈으니 민주당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문재인을 지키자”는 얘기가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보수 신문인 조선일보가 ‘지지율 오르자 되살아난 윤 후보의 진중치 못한 언행’이라는 사설에서 “윤 후보가 적폐 청산을 말하면 이런 정상적 사법 절차까지 모두 정치보복처럼 비칠 수 있다”고 비판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런 탓에 윤 후보의 ‘적폐수사’ 발언은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을 낳으면서 이 후보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준 것으로 판단된다. 선거가 임박해가는 시점에서 한표 한표가 갖는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지금 시점에서 윤 후보의 적폐수사 발언은 패착이었던 셈이다. 다만 차기 정권에서의 적폐수사에 대한 여론이 팽팽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이 문제가 대선 승부에 큰 영향까지 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BS 의뢰로 지난 11∼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윤 후보의 적폐수사 발언에 대한 찬반여론이 팽팽한 것으로 나타난다. 응답자의 47.6%는 윤 후보의 발언을 두고 “정치보복 공언”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고, “원론적인 수준”이라고 공감한 비율은 47.5%로 조사돼 윤 후보의 발언에 대한 평가가 팽팽히 갈린 것으로 보인다. [그림2]

윤 후보가 ‘적폐수사’ 발언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사과해야 한다’는 응답이 48.0%,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46.2%로 역시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3] 윤 후보의 발언이 판세 전체를 흔들 정도의 영향을 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당 지지층의 결집을 가져와서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졌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윤 후보 발언의 부적절함과는 별개로, 이 발언에 대해 감정적인 반응을 드러내며 야당 후보를 상대로 대치 상황을 만든 문 대통령의 모습 또한 논란거리가 됐다. 문 대통령은 윤 후보의 발언이 있은 직후 열린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윤석열 후보가) 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에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한다”면서 윤 후보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본인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청와대는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대통령이 직접 야당 대선 후보와 대치하는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 예상대로 국민의힘 측에서는 ‘대통령의 선거개입’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대선정국이 느닷없이 ‘문재인 대 윤석열’의 대치로 가는 모양새가 됐다.

파장이 커지자 윤 후보는 일단 진화에 나섰다. “문 대통령님과 저는 똑같은 생각이라 할 수 있겠다. 저 윤석열 사전에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는 없다”면서 문 대통령의 격분을 낳은 정치보복 의미가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아울러 “권력형 비리와 부패에 대해서는 늘 법과 원칙, 공정한 시스템에 의해 처리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려왔다. 그건 제가 검찰에 재직할 때나 정치를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없는 것”이라고 부연해 자신이 집권하더라도 수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요구하는 사과는 하지 않아, 자신의 원칙적 입장에는 변함이 없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해명성 부연 설명으로는 청와대의 분위기가 달라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15일 “윤 후보 발언에 대한 청와대 논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10일 할 말씀을 했고, ‘지켜보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답했다. 윤 후보의 명시적인 사과가 없었기에, 그 정도 해명으로 청와대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거나 사안이 종결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의 격분에 일단 윤 후보가 확전을 하지 않고 진화에 나선 것은, 지금 상황에서 정치보복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수세적 입장에 처한 윤 후보가 뒤로 물러섰다고 해서 적폐 문제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인식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당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함께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정부 시기의 적폐수사에 대한 문 대통령의 대응 태도에도 문제는 있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의 적폐청산 수사는 얼마나 대단했던가. 적폐청산을 국정과제 1호로 제시했던 문재인 정부는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 청와대 비서실장·수석비서관, 국정원장, 장·차관, 국회의원, 군 장성, 각 부처 공무원들에 이르기까지 200여 명을 구속했고, 1000명 이상을 수사했다.

이 잡듯이 털어내는 수사가 2년 동안 지속됐고, 적폐청산 수사의 장기화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하는 여론도 대두됐다. 그럼에도 당시 적폐청산 수사는 현직 대통령의 탄핵까지 불러온 사태를 역사적 차원에서 정리하기 위해 한번은 제대로 거쳤어야 할 과정이었다. 그 정당성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다. 촛불과 탄핵을 거쳐 들어선 정부라면 응당 했어야 할 일이다. 그래서 그 범위와 규모, 기간이 과도한 면은 있었음에도 기본적인 정당성은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랬던 문재인 정부가 자신들에 대한 적폐수사는 안 된다며 펄쩍 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진정으로 문재인 정부에서는 적폐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고 믿는 것일까. 문재인 정부의 ‘신적폐’를 말하는 것은 장삼이사들 사이에서는 흔하디 흔한 일이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면서 들어선 정부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비판들이 이어진 광경들을 청와대만 눈 가리고 귀를 막아 몰랐던 것일까.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검찰개혁’을 내걸고 살아있는 권력에 수사의 칼을 들이댄 검찰총장과 검사들을 내모는 과정에서 수많은 초법적 행위들이 있었다. 훗날 반드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경고했지만, 그때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선정국에서도 논란이 되어온 대장동 사업 의혹, 성남 FC 후원금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같은 사건들, 그리고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원전 경제성 조작, 라임·옵티머스 사건 등도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다. ‘고발 사주’ 의혹이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같은 야당 후보 쪽 관련 비리 의혹 수사에는 철저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비리 의혹은 적당히 덮으려는 광경들이 반복됐다. 그러다 보니 한번은 진상을 규명하고 정리하고 가야 할 문제들이 쌓이게 됐다.

그러니 그렇게 화부터 낼 일은 아니다. 국민의힘이라는 보수야당이 크게 달라진 것도 보이지 않고, 윤 후보의 리더십이 큰 신뢰를 받는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정권교체 찬성 여론이 높은 이유를 문 대통령은 정녕 모르는 것일까. 내로남불의 정치로 표현되는, 자신들의 잘못은 언제나 관대하게 덮고 지나갔던 태도가 오늘과 같은 정치적 결과를 낳은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정치보복을 목적으로 한 수사가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서로의 철학과 가치가 따른 정책을 적폐라고 몰아붙이는 수사를 해서도 안 된다. 만약 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결과가 나온다 해도, “윤석열 사전에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는 없다”는 다짐은 당연히 지켜야 한다. 조국 사태 이후로 집권세력이 자신을 검찰총장 자리에서 쫓아내려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온갖 박해를 일삼았다고 생각하는 윤 후보로서는 집권 이후 복수에 대한 유혹이 충분히 따라다닐 수 있다.

그러나 그 유혹을 끊어낼 수 있어야 우리 정치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여준 바 있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온갖 탄압과 음해로 생사의 기로에 서며 고초를 겪었던 그였지만, 정작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에는 그들 세력에게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민 인물로 그는 역사에 기록돼 있다. 우리같이 극심한 정치적 대립이 이어지는 환경에서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일은 여전한 과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사거리에서 위기극복·국민통합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다만 어느 것이 정치보복이고 적폐수사인가를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 해석과 주장이 다를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퇴임을 앞둔 현직 대통령이 판단할 일도, 차기 대통령이 판단할 일도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수사기관, 결국은 모든 것을 지켜보는 국민이 최종적으로 판단할 일이다.

윤 후보의 발언은 부적절했지만, 그렇다고 야당 대선 후보가 해명을 하며 한발 뒤로 물러섰는데도 여전히 “지켜보고 있다”며 끝내 사과를 요구하는 청와대의 태도도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누가 봐도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수사 얘기도 아니고 ‘불법과 비리’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얘기한 것인데, 무조건 안 된다고 하면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치외법권 지대에 있느냐는 질문을 낳을 수밖에 없다.

‘적폐’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였다. 그런데 그동안 이 말이 너무 남용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 의미가 모호한 상태에서 정치적 반대세력을 향한 낙인찍기를 위한 혐오 표현으로 적폐라는 말이 사용돼 왔다.

그러다 보니 엄격하게 가릴 것도 없이, 그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적폐라고 공격하는 광경들이 일상화됐다. 적폐언론, 적폐검찰, 적폐사법부, 적폐야당 등 그 말 한마디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처럼 여겨진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문재인 정부 집권세력과 열렬 지지자들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시간을 남겨놓고 야당 대선후보가 적폐수사를 말하고, 퇴임을 앞둔 현직 대통령이 그에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는 광경은 어쩌면 부메랑 같은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기에 있었던 모든 일들에 대해 통째로 수사를 해야 한다, 안 된다는 논쟁은 공허한 정치싸움일 뿐이다.

정권이 바뀐다 해도 민주당이 국회 의석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환경에서 마구잡이 식의 수사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구체적인 사건의 내용을 놓고서 성격을 가릴 일이지, 이런 식으로 정치적 예단을 갖고 미리 다툴 일이 아니다.

적폐수사 발언에 대한 민주당의 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윤 후보는 지난 16일 광주 유세에서 “보복 같은 거 생각한 적 없고 하지 않을 것이니 엉터리 프레임으로 위대한 국민을 현혹하지 말라”고 반격에 나서 공방전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 벌어진 적폐수사 논란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절제의 미덕이다. 차기 집권을 목표로 하고 있는 윤석열 후보에게도, 그의 말에 격하게 반응하는 문재인 대통령도,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과 국민의힘도, 모두가 절제가 필요해 보인다.

야당 쪽은 정치보복이라는 의심을, 여권 쪽은 내로남불이라는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그 문제가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좌우하는 준거가 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대선이 되도록 관련 당사자들의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프랑스 철학자 제라르 벵쉬상의 말이다. “내가 정의롭다고 믿을수록, 또 이러한 믿음에 만족할수록 나는 덜 정의롭다.” 자신의 정의로움에 대한 과신이 아닌 자신에 대한 의심이 필요하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