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및 부위원장 인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소야대 환경에 처한 윤석열 정부에게 협치는 선택 아닌 필수”
“국민의 공감 얻는 국정에 실패하면 협치 주도할 힘 가질 수 없어”
“민주당도 강경파가 물러서고 균형적 정치인들이 주도하며 협치의 손 잡아야”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축하 인사 통화를 하며 꺼낸 말이 ‘통합’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윤 당선인에게 축하 전화를 하면서 “선거 과정의 갈등과 분열을 씻어내고 국민이 하나가 되도록 통합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통합에 대한 문 대통령의 주문은 지난 14일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강조됐다. “사상 유례없이 치열한 경쟁 속에 갈등이 많았던 선거였고 역대 가장 적은 표차로 당락이 결정됐다”며 “다음 정부에서 다시 여소야대 국면을 맞게 됐지만 그 균형 속에서 통합과 협력의 정치를 해달라는 것이 국민의 욕구이고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말이었다.

사실 통합과 포용의 정치에 실패한 것으로 비판받아 온 문 대통령이기에, 퇴임을 앞두고 정권교체를 한 새 당선인에게 그러한 주문을 하는 장면이 역설적이기는 하다. 어쩌면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에 나라가 극심한 분열과 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한데 대한 회한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지난 얘기지만,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국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쳐 들어섰기에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통합과 포용의 정치를 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진정한 국민 통합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집권 초기 너무 높은 지지율은 오히려 문재인 정부에 독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야당들은 협치를 원한다는 신호를 발신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굳이 눈길을 주지 않았다. 충분히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으니 구태여 야당들에게 협력을 요청할 이유가 없고 권력을 나눌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들만의 힘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오만이 집권세력 내부의 분위기가 됐던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협치의 손을 내밀지 않고, 야당세력을 겨냥한 적폐청산을 장기전으로 이끌고 갔다. 물론 역사적 견지에서 적폐청산 작업은 필요한 과정이었지만, 청산 작업이 무한정 장기화되면서 국민 사이에서도 피로감이 생겨났고, 정치적 분열이 고착화되기에 이르렀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탄핵연대의 틀을 유지한 협치의 길을 모색했다면, 문재인 정부의 5년은 훨씬 안정적인 방향으로 다를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조국 사태’는 국민들이 두 개의 세상으로 갈라져 나라가 극심한 분열의 늪에 빠지게 됐던 계기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그 같은 국가적 분열 상황을 방치하고 자기 진영과 지지자들에게 갇힌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를 대표하는 주요 정책들도 비판적인 의견들은 배제한 채 지지자들의 요구만 우선했다.

부동산 정책, 소득주도성장, 검찰개혁, 언론개혁, 탈원전 정책들은 진영에 따라 극과 극의 찬반이 교차했지만, 사회적 합의를 건너뛴 정책 추진은 결국 중도층의 이탈 속에서 정권을 넘겨주게 된 상황을 야기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축하 인사 통화를 하며 꺼낸 말은 ‘통합’이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전쟁과도 같았던 20대 대선의 광경도 그러한 분열과 갈등이 낳은 결과였다. 역대 어느 대선도 네거티브에서 자유로운 선거는 없었지만, 이번 대선은 유난히도 죽기살기식 네거티브가 선거전을 덮어버렸다. 성접대, 쥴리, 주술, 전쟁광, 패륜, 기생충, 사기꾼, 전과 4범 같은 용어들이 이번 대선을 상징하는 키워드들이었던 현실은, 상대를 악마로 만드는 데만 매달렸던 선거의 참담한 모습을 알려준다.

누가 승리하든 이러다가 나라가 두 동강 나는 것 아닐까, 이 격한 분열의 후과를 우리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이성은 사라지고 정념만이 넘치는 선거 속에서 그래도 우리 공동체의 앞길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품게 된 질문이었다.

마침 선거 결과도 민심은 절반씩 양쪽으로 선명하게 갈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48.56%,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47.83%를 얻어 헌정 사상 최소 득표 차인 0.73% 포인트(24만7077표)로 승부가 갈렸다. 어느 한쪽이 압승을 거둔 것이 아니니, 심리적 승복도 그만큼 어려워졌다. 대선이 남긴 분열의 후유증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눈앞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윤 당선인이 협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점이다. 굳이 문 대통령이 통합과 협치를 주문하지 않았더라도, 윤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줄곧 통합과 협치를 강조해왔다. 지난 3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 공동선언문에 나온 내용이다.

“국민통합정부는 대통령이 혼자서 국정을 운영하는 정부가 아닐 것입니다. 협치와 협업의 원칙 하에 국민께 약속 드린 국정 파트너와 함께 국정운영을 함께 해 나가겠습니다. 인수위원회 구성부터 공동정부 구성까지 함께 협의하며 역사와 국민의 뜻에 부응할 것입니다. 모든 인사는 정파에 구애받지 않고, 정치권에 몸담지 않은 인사들까지 포함하여 도덕성과 실력을 겸비한 전문가를 등용할 것입니다.”

이는 단지 윤석열과 안철수 두 사람만의 협력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국민통합정부를 만들어 협치를 실현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윤 당선인은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지난 8일 밤에도 국민의당과 합당, 민주당과의 협치를 약속하며 마지막 유세를 마무리했다.

이때 윤 당선인은 “압도적 지지로 저와 국민의힘에 정부를 맡겨주신다고 한들 저희가 일당독재를 할 수는 없지 않나”라고 반문하면서 “야당과 협치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윤 당선인이 선거전 종반에 들어서면서 일관되게 강조했던 것이 통합과 협치였다.

그런 과정을 거쳐 윤 당선인은 마침내 새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당선이 확정된 날 오전에 가진 인사 기자 회견에서도 다시 한 번 협치에 대한 다짐이 나온다. “국민을 위한 정치, 민생을 살리고, 국익을 우선하는 정치는 대통령과 여당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습니다. 국정 현안을 놓고 국민들과 진솔하게 소통하겠습니다.”

이 정도 되면 협치에 대한 윤 당선인의 의지를 의심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협치에 대한 윤 당선인의 절박한 의지도 여소야대의 국회 현실로부터 비롯된다. 현재 국회 의석 수는 민주당 172석, 국민의힘 110석, 정의당 6석, 국민의당 3석,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당 각 1석, 무소속 7석이다.

이번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몇 개 의석이 늘기는 했지만, 180석 안팎에 달하는 ‘범여권-범진보’ 의석 수를 감안하면 국민의힘은 집권여당으로서의 힘을 좀처럼 갖기 어렵다.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윤석열 정부나 국민의힘에서 제출하는 모든 법안 처리를 막을 수 있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앞줄 왼쪽에서 2번째)이 지난 16일 오후 점심 식사를 위해 안철수 인수위원장,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 원희룡 기획위원장 등과 함께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에서 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반대로 이재명 후보가 공약했던 법안들을 민주당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통과시킬 수 있는 상황에도 변함이 없다. 이러니 윤석열 정부에게 야당과의 협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안 후보와 단일화를 했음에도 윤 당선인의 득표율이 과반에 이르지 못한 것도 큰 부담이다. 오히려 이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더한 범진보 성향의 득표율 합이 윤 당선인의 득표율을 넘는 결과가 나왔다. 당선은 됐지만 자신을 찍지 않았던 국민의 여론을 윤 당선인이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5년 전 19대 대선에서 문 대통령이 다자 대결 구도 속에서 과반수에 훨씬 못 미치는 41.08%의 득표율에 머물렀지만, 집권 초기 국민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서 70%를 넘는 지지율을 보였던 선례를 재현하고 싶을 상황이다.

윤 당선인이 원론적인 구호 차원을 넘어 실제로 어떤 방안을 갖고 협치의 시도를 할지는 아직 유동적이다. 최근 ‘김부겸 국무총리 유임 검토설’이 언론에 보도돼 관심을 모으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방안으로 판명 났다.

강력한 협치의 신호가 될 것이고, 새 정부의 안정적 출발도 보장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지 못할 정도로 윤석열 정부의 인재가 없느냐는 시선을 낳을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민주당으로 돌아가야 할 김 총리 입장에서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담스러운 제안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단지 개별적인 아이디어 수준 이상의 의미를 갖기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협치가 야당 쪽에서 몇 사람을 개별 입각시키는 방식으로는 ‘빼가기’ 논란만 낳을 뿐, 의미 있는 정당 간 협치가 되기 어렵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개인들의 거취나 이동이 아니라, 여당과 야당 사이의 ‘당 대 당’ 협치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 수준의 협치조차도 아직은 시기상조인 분위기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공히 대선 이후의 새 질서가 정착돼 협치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데 아직 눈앞의 숙제는 아닌 모습이다. 일단은 국회에서의 입법과정에서 여야 간 협력을 도모하는 차원에서의 협치가 현실적인 길이 될 것이다.

특히 새 정부 출범 이전에 처리해야 할 정부조직법 개정 같은 사안을 여야가 합의 처리하도록 정치적 노력을 기울이는 일은 의미가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조차도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의 이행을 거듭 확인하는 윤 당선인의 입장과는 달리, 20대 이하 여성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민주당으로서는 반대 입장을 고수할 것이 예상된다. 집권 초기의 허니문 기간에도 불구하고, 정부조직법 처리에서의 협치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협치보다 높은 단계인 연정(연합정부)에 대한 주문도 나온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절 야당인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듯이, 정권을 분점하는 여야 간 연합정부의 모색을 권하는 얘기들이다.

“새 정부는 대연정을 포함해서 새 출발을 해야 한다”(정의화 전 국회의장), “연정으로 가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연정을 제안했다”(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 윤석열과 이재명 양 후보의 영입을 거절했던 김성식 전 의원도 대선 과정에서 “연정에 대해 고민해 보길 각 후보에게 권하고 싶다”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은 협치의 수준을 뛰어넘는 연정의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입법에서의 협력이거나 자리 몇 개 내주면 되는 협치와는 달리, 연합정부가 가능하려면 집권세력이 자기들의 권력을 상당 부분 내놓기로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윤 당선인 측에서 거론해온 협치는 특별히 손해 보는 일 없이 여야 간 협조가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수준 이상의 것은 엿보이지 않는다.

앞으로도 윤석열 정부의 주도세력이 과연 정체성도 다른 민주당을 상대로 연정을 위한 통 큰 결단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다가 지지층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던 선례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과 정권교체를 위해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킨 지지층 역시 그러한 민주당과의 연정에 선뜻 동의할 것 같지는 않다.

더욱이 이제까지 보았던 윤 당선인의 리더십은 파격적으로 새롭고 큰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연정에 대한 일부의 요구는 정치환경 자체가 바뀌는 시점까지는 희망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사실 우리 현실에서는 연정은 고사하고 협치만 하기도 쉽지 않다. 너도 나도 협치를 말하고는 있지만, 막상 협치가 제대로 실현됐던 일이 언제 있었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더욱이 지금 국민의힘과 민주당 사이에는 일종의 원한관계라 할 만큼 서로에 대한 적대감과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국방부 청사와 주변 모습. 인수위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새 집무실로 용산구 국방부 청사를 검토하고 있다. 관저는 집무실 인근에 새로 짓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런 현실에서는 사실 협치만 어느 정도 이뤄져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협치는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손바닥과 같다. 아무리 윤석열 정부가 협치의 손을 내밀어도 민주당이 이를 잡아주지 않으면 협치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민주당이 윤 당선인이 내미는 협치의 손을 잡을 것인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언제부터인가 민주당의 정치적 DNA는 공존의 협치가 아니라, 자신들의 뜻대로 하는 ‘개혁’이 됐다. 많은 경우 민주당이 말하는 개혁은 독선과 독주를 미화하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협치의 손을 순순히 잡기에는 민주당은 강성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정당으로 굳어져 버렸다.

문재인 정부 집권 기간 내내 민주당 안에서 균형이나 협치를 말하는 정치인들은 설 자리가 없었고, 오직 강경한 하나의 목소리만이 당의 의견으로 통일됐다. 그 결과가 중도층의 이탈에 따른 정권교체였던 셈이다. 하지만 대선 패배의 충격 속에서도 민주당 강경파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정청래 의원은 윤 당선인의 공약이었던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해 “여가부 폐지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모든 것이 윤석열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정부조직법은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국회에서 막겠다는 애기였다. 그 대신 “이재명 후보가 공약한 정치개혁, 민생법안, 언론개혁, 검찰개혁 등을 신속하게 밀고 나가 권력의 절반인 국회 주도권을 틀어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병훈 의원이 꺼낸 말은 한층 노골적이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국회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확실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국회에서 호락호락하게 협조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들렸다.

당 밖에서도 민주당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는 이번 대선에 대해 사실상 불복하는 말들이 잇따르고 있다. 김민웅 목사 등이 이끄는 ‘개혁과 전환 촛불행동연대’는 “이제 본회전이 시작됩니다.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의 힘을 믿습니다”라면서 “새로 진격하고자 합니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런 분위기라면 민주당이 협치에 대해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평소 당내에서 성찰적 얘기를 자주 하던 5선의 이상민 의원은 “사람들이 민주당에 대해 생각하면 내로남불, 위선, 오만, 독선, 맹종, 패거리 의식 등을 떠올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4·7 재보선 때 국민의 호된 꾸지람이 있었다. 그걸 탈피하는 노력을 좀 해야 했었는데 그것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았다”는 진단을 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였다. 그런데 그런 말조차도 당내에서 거센 공격에 시달린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 총구 거꾸로 돌려 쏘는 작은 배신 반복자 이상민을 축출하라”(김우영 전 선대위 대변인),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했다고 아무 말이나 꺼내 당을 몰아세우거나 우리 후보를 비판하지 않기”(이경 전 선대위 대변인).

조응천 비대위원의 자성도 있었다. “반론을 용납하지 않는 당 내부문화가 정착돼 그때마다 강고한 진영논리로 덮이면서 민주당은 더 개혁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은 세력으로 인식됐다.” 그에 대해서는 “이런 진단과 분석이 민주당을 계속 망조가 들게 할 것”이라며 “조응천을 비대위에서 내보내라”(김민웅 목사)는 화살이 당 밖에서 날아온다.

“국민의힘도 자유한국당 시절 강경파 세력에 끌려 다니다 연속 패배하지 않았나”라며 “어느 정치 세력이든 원리주의 강경파에 끌려가면 망하게 돼 있다”고 했던 민주당 상임고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윤 당선인이 풀어야 할 과제도 간단하지 않다. 물론 협치를 하겠다는 윤 당선인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앞서 설명한대로 민주당과의 협치가 가능할지는 여러 가지가 유동적인 상황이다. 진영 정치가 여전히 위력을 갖고 있는 현실에서, 협치 보다는 대결에 익숙한 정치 문법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윤 당선인에게는 민주당과의 협치 이상으로 국민과의 협치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과연 성공할 수 있느냐에 대한 답은 결국 국민으로부터 나오게 돼 있다.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정부가 돼야 민주당도 여론을 의식해 협치의 손을 잡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고 인수위원회가 구성되고 있는 현재까지의 모습을 보면, 여러 가지로 불안한 구석들이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안철수 인수위원장 체제는 후보단일화 약속의 이행이라는 차원, 그리고 안철수라는 정치인의 능력을 살리며 정권 기반을 확장하는 카드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그 뒤로 중용되는 몇몇 인수위원들이나 당선자 주변의 면면을 보면 과거 실패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로 돌아간다는 인상을 받을 국민도 많을 것 같다. 물론 과거의 보수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도 능력이 있으면 다시 중용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과거 정부에서 정책실패의 책임자, 위법 행위로 재판을 받고 있거나 여론의 지탄을 받은 인사를 중용하는 모습은 확장성을 도모하겠다는 윤 당선인의 다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정권교체기의 금쪽 같은 시간에 하필이면 찬반 논란이 따르는 의제들과 씨름하고 있는 모습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도 아닌 용산 국방부 청사까지 가면서라도 왜 반드시 옮겨야 하는지 이해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당초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시민들과 더 멀어지는 선택이 될 수도 있고, 이로 인해 초래되는 문제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공약이었다고는 하지만, 상당한 논란과 비용을 감수하면서라도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아직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여가부 폐지 문제도 그렇다. 윤 당선인이 워낙 거듭 확인하다 보니 마치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1호가 된 것 같은 분위기가 돼버렸다. 여가부는 폐지할 수도 있고, 개편할 수도 있는 것이기는 한데, 이 문제가 그렇게까지 시급한 문제인지는 역시 잘 모르겠다. 마치 문재인 정부 기간 내내 민심과는 유리돼 검찰개혁이 국정과제 1호처럼 됐던 광경을 떠올리게 된다.

전반적으로 국정 우선순위를 설계하는데 있어 국민의 공감도가 떨어져 보인다. 새 정부의 시작은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 의제와 함께 이뤄져야지, 이렇게 논란이 따르는 사안부터 밀어붙인다면 새 정부 출범의 효과는 반감되고 말 것이다. 국민과의 소통 속에서 공감을 얻는 정부로 출발하지 못한다면 협치를 주도할 힘을 갖기도 어렵게 된다.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 협치다. 어쩌면 협치는 실현되지 못한 채 책임 공방만 무성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도 협치의 태도를 강제하는 오는 6월 지방선거와 2024년 총선이라는 정치 일정이 있는 것은 다행이다. 국민들은 여야 어느 세력이 협치를 거부했고 독선의 정치를 했는지를 지켜보면서 다시 심판의 표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협치가 제도적인 차원에서 가능하도록, 선거제도 개혁 같은 정치개혁 프로그램을 국회에서 합의하고 처리하는 일도 빠뜨릴 수 없는 과제다. 대결의 시대가 가고 협치의 시대가 왔다는 소리를, 정치적 전환기 속에서 여야가 함께 듣게 되기를 주문한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