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대통령직 인수위가 있는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인근에서 윤석열 당선인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새 정부에 대한 민주노총의 요구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치열했던 20대 대선에서 국민은 윤석렬 국민의힘 후보를 당선자로 선택했다. 이에 따라 그가 내세웠던 공약들이 각광을 받으면서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를 놓고 설왕설래가 이뤄지고 있다. 노동 분야도 예외는 아닌데 연공급을 직무급 및 성과급 위주로 변경하겠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직무급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직무급은 어떤 직무에 대해 성별, 나이, 학력, 근속연수 등과 무관하게 동일한 기본급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가장 잘 반영하는 임금 체계라는 평가를 받는다. 직무의 상대 가치를 측정하고 그에 따라 임금을 달리 지급한다. 성과급은 개인이나 집단이 수행한 작업성과를 평가해 그 결과에 따라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연공급은 업무와 무관하게 성별, 나이, 학력, 근속연수 등 개인의 속성에 따라 기본급을 지급하는 것이다. 고도 성장기를 맞고 근로자 속성이 비슷한 기업에 적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속성만 충족시키면 하는 업무와 무관하게 누구나 동일한 임금을 받기 때문에 상당히 평등한 임금 체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직무를 중심으로 놓느냐 사람을 중심으로 놓느냐에 따라 직무급과 연공급이 갈라지는 것이다. 어째서 이 시점에 임금 체계 변경이 이슈로 떠오르는 것일까. 그것은 기업환경 및 노동방식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고도 성장기를 마무리하고 2~3%대 낮은 성장률로 접근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동안 한국 산업을 이끌어왔던 제조업은 서서히 한계에 봉착하고 있고 4차 산업혁명을 기치로 하는 IT 산업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 구조의 전환이 시급한 것이다.

이에 따라 소프트웨어 개발·운용이 중요해지고 있고 플랫폼 노동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기업이 요구하는 인력 구성이 달라지고 있고 노동 방식도 보다 유연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변화는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노동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나타나고 있고 기업마다 젊고 유능한 고급인력의 충원에 매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임금 체계도 여전히 연공급이 주류로 이러한 요구에 적합하지 못하다. 연공급은 입사 초기에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기 때문에 젊고 유능한 고급인력에게 매력이 없다. 그에 반해 나이 많은 고참 직원들은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회사를 나가라는 압력에 시달린다.

직무급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직무가 기업에 주는 가치에 따라서 임금이 결정되므로 전문지식을 갖춘 청년층을 흡수하기 용이하다. 자연스럽게 임금이 생산성에 맞춰지기 때문에 회사는 고참직원을 해고할 유인이 적어진다.

미국에서는 직무급이 일찍부터 도입됐으나 우리와는 다소 배경이 다르다. 임금 차별을 해소하려는 노동계의 노력이 시발점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 이전에는 사용자가 명확한 기준 없이 임금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원칙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기준을 요구한 것이다.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도입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동일임금법’(Equal Pay Act)은 남녀 간 임금차별을 금지했고, ‘인권법’(Civil Rights Act)은 성별, 인종, 피부색, 종교, 출신국가에 따른 임금차별을 금지했다.

종신고용의 관행에 따라 연공적인 질서가 자리 잡혀 있는 일본의 경우가 우리와 보다 가까울 것이다. 일본도 장기불황과 고령화에 따라 임금 체계의 변화가 절실했는데 처음에는 직무급 도입을 강하게 추진했다.

그러나 직무평가의 객관성을 놓고 갈등이 심화된 데다가 잦은 직무의 변경에 따른 혼란, 임금의 하락에 대한 저항으로 순탄치 않았다. ‘장유유서’의 사회 질서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에 따라 ‘일본식 직무급’이라는 역할급이 대신 자리를 잡고 있다. 역할급은 직무능력에 따라 역할을 부여하고 그 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제도다. 직무급과 성과급을 적당히 혼합한 것이다.

이처럼 임금 제도는 사회문화적 환경과 기업의 필요에 따라 변형돼 만들어진다. 개념 그대로 현장에 적용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에 직무급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우리 노동 현장에 맞는 직무급이 설계돼야 할 것이다.

직무급에도 단점이 많다. 우선 직무를 어떻게 설계하고 평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경영자의 주관이 들어가기 쉽고 객관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직무에 따라 임금 격차가 많이 날 수 있다. 이 경우 종업원들은 좋은 직무로 옮기고 싶어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장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종업원들이 이직 대열에 올라타면서 이직률이 높아지고 인사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

서구의 직무급 제도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려면 사전에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며 노사간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독일의 ‘신임금구조협약’(ERA)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이는 2000년대 초반 독일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에서 도입됐다. 이 제도의 핵심은 직무 가치에 따라 기본급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성과급과 이윤분배액에 따라 임금차이가 발생하지만 고정급 비중이 높기 때문에 근로자의 생활 안정이 보장된다.

ERA의 평가기준은 지식과 능력, 사고력, 재량권·책임, 의사소통, 관리능력 등 5개 항목으로 구성되며 노사가 함께 만든 세부기준에 의해 점수를 부여한다. 중요한 것은 10여년의 논의과정을 거쳐 2003년 6월 협상을 타결했고, 이후 순차적으로 다른 업종에 확산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직무급을 강조하지만 그 내용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도입을 강제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직무급보다는 성과급을 통해 노동강도를 높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볼 때 이러한 방식은 좋은 결과를 낳기 어렵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참여 하에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대타협’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후 태도가 돌변해 ‘저성과자해고·취업규칙 변경 양대지침’을 발표하고 노동개편 관련 5대 법안을 추진했다. 이는 노조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법안 역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힘에 의한 밀어붙이기는 오히려 노사간 불신만 조장했고 개혁의 동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현재 업계의 필요와 신정부의 출범이 맞물려 임금 체계 변화를 도모하기에 좋은 시간이 도래했다. 그러나 노사간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며 상호간 협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 사례와 해외 상황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길 기대한다.

정인호 객원기자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