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송영길, 우상호의 불출마로 ‘86세대 용퇴론’ 매듭져야”
“민주당은 ‘세력’과 ‘우상’ 믿지 말아야”
“윤석열 정부 ‘공정’과 ‘상식’ 어긋나면 힘들어질 것”

지난 2019년 11월 7일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간한국>과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이혜영 기자)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부산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헌신한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6.1 지방선거 불출마와 함께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김 전 장관은 지난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 민주주의, 통일, 기득권 타파 등 거대담론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정치의 시대가 됐다"라며 “정치를 그만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저는 이번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근본적으로 저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고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대선 기간 내내 제가 정치 일선에서 계속 활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번민의 시간을 가졌다"라며 "저를 정치에 뛰어들게 만들었던 거대 담론의 시대가 저물고 생활정치의 시대가 왔다면, 나는 거기에 적합한 정치인인가를 자문자답해봤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의 정계은퇴는 대선을 치르면서 화두가 됐던 더불어민주당의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용퇴론과 맞물려 조용한 파장을 불러왔다. 김 전 장관의 경우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함께 86세대의 맏형 격인 탓이다.

1984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전두환 정권의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 점거 사건으로 구속됐다. 김 전 장관은 26살의 젊은 나이에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YS가 직접 ‘삼고초려’를 해 상도동 막내로 인연을 맺은 것이다. ‘YS의 셋 째 아들’로 불릴 만큼 YS의 신뢰가 깊었다.

그의 또 다른 별명은 ‘독수리 5형제’이다. 김 전 장관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 광진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당내에서 개혁적인 목소리를 높이다가 당내 주류 의원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결국 2003년 당시 이부영·이우재·안영근·김부겸 의원과 함께 탈당해 그해 11월 열린우리당 창당에 동참했다. 이 때 이들 탈당파 5명의 별명이 독수리 5형제였다.

그는 2011년 지역주의 타파에 매진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다. 19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시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했지만 당시 오거돈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를 위해 사퇴했다. 낙선의 고배를 잇달아 든 김 전 장관은 20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21대 총선에서는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에게 석패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그는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에서 박형준 현 부산시장과 맞붙었지만 정권심판론의 구도에 밀려 낙선했다. 박 시장과는 고려대 동아리(고대문학회) 선후배 관계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전 장관의 정계은퇴는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초 그가 펴낸 ‘고통에 대하여’에서 정계은퇴를 암시한 발언을 볼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 정치는 나와 잘 안 맞는 옷이라고 생각했다. 사교적이고 외향적이어야 하며 말도 많아야 하고 뻥도 잘 쳐야 하며 팬덤도 만들면서 인기몰이를 해야 하는데 나는 기질적으로 그런 것과 거리가 멀었다”고 술회한 것이다.

김 전 장관은 <주간한국>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최근 민주당 내에서 논란이 된 86세대 용퇴론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86세대 맏형 격인 자신을 포함해 송영길 대표, 우상호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매듭지을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다음은 김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정계은퇴를 결심한 배경이 무엇인가.

“거대 담론의 시대가 저물고 생활정치의 시대가 왔다고 한 것은 다른 말로 ‘큰 정치’의 시대가 가고 ‘작은 정치’의 시대가 다가왔다는 점을 의미한다. 부동산, 성평등, 재난지원금 등 생활형 이슈가 대선 승패를 좌우하는 이슈였다고 본다. 저는 그런 정치에 익숙하지 않다. 가슴이 뛰지 않는다. 가슴의 피가 들끓어야 의지가 생기고 헌신하고 봉사할 수 있는 자세를 추스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에 기대 기득권을 유지하는 정치인으로 머물 수 있다. 그래서 정치를 떠나 다시 시민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일종의 하방이다.”

▲정계은퇴를 언제부터 고민한 것인가.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에서 부산시장 후보로 나와 낙선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결심이 확고해진 것이다.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결심한 것이다. ‘고통에 대하여’라는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선출직 정치인이라는 옷이 과연 나한테 맞는 옷인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국민을 섬긴다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를 했다면 부담감 없이 홀가분하게 그만 둘 수 있었겠지만 결과가 좋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다.”

▲민주당의 전략적 거점이었던 부산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몸을 내던져 나름의 성과도 거뒀는데.

“가족까지 동반해 부산에 정착하면서 나름대로 소신 정치를 펼쳤는데 개인적으로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자평한다. 부산·울산·경남(부울경) 메가시티 건설의 경우 문재인 정부에서 거의 성사가 됐고 가덕도신공항 건설 등도 소기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지역주의로 인한 일당 독점구도 타파는 결국 주권자인 시민의 몫이다. 내 뒤를 이어 유능한 후배 정치인들이 나와서 계속 부산시민들과 교감하고 소신을 지켜나가면 언젠가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대선을 거치면서 민주당 내 ‘86세대 용퇴론’이 등장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특정 세대를 지목해 모두 용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상식적이지 않다. 86세대의 맏형 격인 저와 송영길 대표, 우상호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매듭을 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86세대 후배 정치인 중에서도 생활정치, 민생 이슈와 관련해 고민하고 집중하는 의원들도 많다.”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에 하고 싶은 고언이 있다면.

“한마디로 ‘세력’과 ‘우상’을 믿지 않았으면 한다. 팬덤 정치의 폐해는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이념, 개혁목표 등을 우상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공감능력을 키워야 한다. 더불어 국회의원들이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서 소신 정치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차기 윤석열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윤석열 정부는 대선 구호처럼 ‘상식과 공정’의 정치를 펼치면 성공할 것이다. 반면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 집무실 국방부 이전 추진의 사례를 보면 암울하다. 시한을 정해놓고 무리하게 추진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국민의 상식에 반하는 일이다. 당선인과 그 주변 인사들의 상식이 국민의 상식과 충돌할 수 있기에 늘 국민과 먼저 소통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재형 기자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